힙합 가사처럼 읽을 수 있는 소설 나와

입력 2016-08-29 21:47

“교실은 0과 1의 세계로 나뉘어. 선생들이 들어와 떠드는 시간 0, 선생들이 나가고 아이들이 완전히 반을 장악하는 시간 1. 불행히도 나는 0과 1의 시간 어디에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해. 수업은 따분하고 아이들은 유치해.”

힙합 가사처럼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나왔다. 힙합하는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랩 스타일로 문장을 구성한 소설 ‘싸이퍼’(사계절)가 그것으로 국내 청소년문학상 가운데 가장 먼저 시작된 ‘사계절문학상’의 올해 대상 수상작이다.

작가 탁경은(33·사진)씨는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사설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면서 10년간 습작해 왔다. 탁씨는 29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누구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갈등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힙합은 뭔가 고군분투하는 자세를 다루는데 적합한 소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랩은 거침이 없고 솔직하고 저항적인 게 특징”이라며 “그게 소설에서 필요한 저항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싸이퍼(cypher)’는 힙합 용어로 래퍼들이 무대에서 마이크를 주고받으며 프리스타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 소설 ‘싸이퍼’에서는 힙합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중학생 ‘도건’과 힙합이 좋아 가출한 족발집 배달 알바 ‘정혁’의 이야기가 마치 싸이퍼를 하는 것처럼 교대로 전개된다. 이 중 도건이 화자로 나오는 부분이 랩 형식으로 서술돼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힙합은 근래 대중문화와 청년문화의 핵심으로 부상했지만 국내 소설에서 힙합을 수용한 경우는 ‘싸이퍼’가 처음이다. 책을 출간한 사계절출판사 김태희 팀장은 “청소년문학은 10대의 세계를 다루면서 비주류적인 문화와 시각을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면서 “이 책을 통해 기성 세대들도 힙합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오래 꿈꾸었던 등단의 길에 들어선 탁씨는 “이 소설에는 재능과 열정에 대한 내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끊임없이 두리번거리고 아파했던 나의 청춘을 위무하며 동시에 아이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