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안의 괴물 <1>] 검거 늘어도 처벌은 솜방망이… ‘폭력의 굴레’ 못 벗어나
입력 2016-08-30 04:00
대구에 사는 A양은 지난해 아버지의 ‘매질’을 못 견디고 가출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돌아왔다’는 이유로 A양을 바닥으로 패대기치고 목을 졸랐다. 이런 일은 반복됐고, 1년간 경찰이 세 번이나 출동했다. A양의 아버지는 3년간 경찰에 두 번 검거됐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서울에 사는 임모(41)씨는 지난 1년간 세 번 경찰을 만났다. 아내와 말다툼을 하다 주먹을 쓰는 일이 잦아서다. 아내는 남편의 처벌을 원치 않았다. 그저 맞을 때마다 112신고에 의지할 뿐이다.
박근혜정부는 가정폭력을 ‘4대악’ 가운데 하나로 꼽고 전면전을 벌여왔다.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강화’는 국정과제였다. 하지만 반복되는 ‘폭력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피해자는 수두룩하다.
솜방망이 처벌
우리 사법제도는 가정폭력에 온정적이다.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검거됐다 구속되는 비율은 2013년부터 최근까지 매년 1% 수준에 머문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뒤 형사 기소되는 비율도 2013년 17.21%에서 매년 줄어 올해는 7.83%(7월 기준)에 그친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피해자 보호보다 가정 보존에 초점을 맞춘다. 이 법은 1997년 ‘가정’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형사기소와 불기소 사이에 ‘가정보호사건’이라는 중간 수준의 절차를 뒀다.
그런데도 가정폭력범죄의 불기소 비율이 높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4년 말 펴낸 ‘현행 가정폭력처벌특례법의 운영실태 및 입법적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불기소율은 1990년대 후반 20∼30%에서 2013년 60.4%까지 꾸준히 오르고 있다. 기소유예 인원 중에서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비중은 2007년 6.2%에서 2014년 29.6%로 치솟았다. 이 제도는 상담을 이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또한 법원에서 아무 처분을 받지 않는 비율은 매년 30%대에 이른다. 처분은 주로 상담위탁, 사회봉사·수강명령, 보호관찰 등에 그친다. 상담위탁 처분을 받은 비율이 2014년 21.3%인 반면 접근행위제한, 친권행사제한, 감호위탁, 치료위탁 등 강도 높은 처분들의 비율은 다 합해 1% 수준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재범’이라는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피해자 보호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처벌이 무겁지 않으면 가해자의 보복범죄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명숙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29일 “피해자들은 반복되는 폭력을 못 견뎌 가정을 깰 각오까지 한 상태인데 검찰과 법원은 ‘초범이니 기회를 주자’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이 보호처분을 내린 뒤 실제 얼마나 효과를 거뒀는지를 확인하고 최종 조치를 결정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범률 급감’에 숨은 착시
박근혜정부는 가정폭력 대책의 ‘핵심 성적표’로 ‘재범률 급감’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가정폭력 재범률이 2012년 32.2%에서 지난해 4.9%까지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10월 ‘경찰의 날’ 축사에서 “4대 사회악 척결에 적극 나서면서 성폭력과 학교폭력, 가정폭력 피해와 재범률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치하했다.
그러나 현실은 통계와 다르다. ‘재범률’에는 ‘착시효과’가 숨어 있다. 가정폭력 실태가 개선됐는지 확인하려면 ‘가정폭력 전과자가 다시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비율’을 봐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가정폭력 검거인원 중 동종 재범자 비율’을 산출한 뒤 ‘재범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검거 숫자만 늘리면 재범률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재범률’이 곤두박질치는 동안 가정폭력 검거인원은 9345명에서 4만7549명으로 급증했다. ‘재범률’은 올해 7월 기준으로 3.9%까지 떨어졌지만,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정폭력으로 여러 번 검거돼도 기소유예 처분 이상을 받은 전력이 없으면 ‘재범’에 들어가지 않는 맹점도 있다. 변현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가정폭력방지본부장은 “가정폭력 재범률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며 “실적 위주 정책보다 반복되는 폭력의 고리를 끊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보기]
☞
☞
☞
전수민 강창욱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