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 역할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남자가 주로 맡아온 영역에 여성이 많이 진출하고 있다. 해외 전쟁터로 싸우러 가는 건 총을 든 여성이고, 남편은 아이를 안고 배웅하는 장면을 TV 뉴스 화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전장에 나간 남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베를 짜는 안드로마케의 이야기는 흘러간 꿈이다. 이런 변화가 영화판에도 나타나고 있다. 영화를 리메이크하며 남성이 맡던 역할을 여성에게 맡기는 움직임. 일종의 ‘성전환’이라 할까.
우선 ‘고스트버스터즈’. 괴짜 과학자들이 뉴욕에 출몰하는 유령을 퇴치한다는 이 코미디 영화는 1984년 빌 머레이, 댄 애크로이드, 해롤드 래미스 등 남자들이 주연을 맡아 성공을 거뒀다. 1989년 여전히 남자 일색의 주연으로 속편이 나와 역시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 영화를 소니픽처스가 32년 만에 리메이크하며 주연을 몽땅 여자로 바꿔놓았다. 감독은 액션 코미디 ‘스파이(2015)’를 만들었던 폴 피그, 주연은 ‘스파이’의 히로인이던 멜리사 맥카시를 필두로 NBC 코미디 프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신인 크리스텐 위그, 케이트 맥키논 등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여자 코미디 배우들.
두 번째는 도둑질 영화 ‘오션스 일레븐(스티븐 소더버그, 2001)’을 여성판으로 리메이크하는 ‘오션스 에이트’다. ‘헝거 게임’을 연출한 게리 로스 감독이 10월 크랭크인할 예정. 원작의 주인공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의 여동생(샌드라 불록)이 여자들만 모아 ‘한탕 한다’는 이 영화는 오리지널이 매트 데이먼, 브래드 피트 등 초호화 남자 캐스트를 기용했듯 거물급 여성 출연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케이트 블랜쳇, 앤 해서웨이, 헬레나 본햄 카터 등.
그러나 이처럼 남성을 여성으로 바꾼 ‘성전환’ 리메이크 영화들이 오리지널의 맛을 해치는 일은 없을지 일면 걱정스럽다. 한번 생각해보자.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여성의 대사라곤 한 줄도 들어가지 않은 고전 걸작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여성판으로 만든다고. 뭔가 전율스럽지 않은가.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85> 걸작의 ‘여성판’ 리메이크
입력 2016-08-29 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