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 출신 ‘자전거 천사’ 2천여대 이웃 기증하고 세상떠나

입력 2016-08-28 21:08
자전거 천사 설동춘씨의 생전 모습.중구청 제공

저소득층 주민과 학생들에게 2000여대의 친환경 자전거를 기증하며 사랑을 실천해 온 북파공작원 출신 ‘자전거 천사’가 세상을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주인공은 특수임무유공자회 서울 중구지회장을 맡았던 고(故) 설동춘(65)씨. 서울 토박이인 설씨는 20세 때 군 입대를 기다리던 중 정보기관 물색조의 감언이설에 속아 강원도에서 고된 훈련을 받았다. 이어 70년대 초반 북한에 3번 침투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 군대를 제대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당국의 감시와 사회의 냉대였다.

직장조차 잡기 힘들었던 그는 어떻게 하면 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갈까 고민하던 중 자전거를 생각해냈다. 그는 고물상에서 낡은 자전거를 구입하고 주택가나 도로변에 무단 방치된 폐자전거와 고장 난 자전거를 수거했다. 이런 중고 자전거를 깨끗이 닦고 수리한 뒤 광택을 입혀 만든 친환경 자전거 150대를 2009년 저소득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이어 2010년에는 관내 6개 중·고교에 43대를 기증해 저소득층 학생들이 통학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설씨가 지금까지 기증한 자전거만 총 2000여대로 동주민센터, 직능단체, 중·고교, 어린이집, 노인회, 중부시장 상인연합회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금액으로 따져도 3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나아가 설씨는 구청 도움으로 2010년 8월 을지로4가에 ‘자전거 무료이용 수리센터’를 열어 하루 30∼50대의 자전거를 무상 수리해줬다.

하지만 고생이 결실을 맺을 무렵 설씨는 식도암 판정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그의 마음은 센터로 향했다. 그는 “우리가 기증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힘이 나요. 병마와 싸워 이겨서 다시 센터에 나가 자전거를 수리해 이웃 주민들에게 기증할 거예요.” 그러나 그의 상태는 더욱 악화됐고 지난 21일 숨을 거두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28일 “겉모습은 곰 같지만 속은 소녀 같은 분이었다”며 “자전거로 사랑을 전한 그의 숭고한 뜻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