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이럴 줄 몰랐다. 패악을 부리던 못된 애인에게 제발 떠나라고 발악하던 것이 바로 어제인데 하루 만에 이렇게 나오면 어쩌라는 건지. 펄펄 끓던 솥의 불을 누군가 끈 것처럼 조용해진 하늘엔 구름이 목동 없는 양떼가 되어 돌아다니고, 이제야 비로소 내 세상이라는 듯 저녁이면 귀뚜라미가 한껏 목청을 돋운다.
‘철이 든다’는 말은 절기의 변화를 알고,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감정 변화는 예측할 수 없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리 혜안이 있다는 이들에게 물어봐도 빗나가지만, 24절기의 변화는 어김없다. 농사가 사는 일의 전부였던 농경시대에 절기의 변화라는 것은 곧 사는 일의 전부였으니까. 철이 든다는 말은 매우 숭고한 의미였고, 자연의 이치를 터득한 지혜를 겸한 어른이 되어간다는 소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과학영농, 특용작물 재배만이 돈이 되는 세상이니 오롯이 하늘의 힘을 빌며 농사짓는 농부도 드물게 되었다. 아예 ‘농부’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들보다 없어졌으니까. 나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었지만 철몰라도 살아지니까 철없이 사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농사를 짓지 않고 사는 이들에게 24절기는 필요 없는 가치인 걸까? 정말 그런 걸까? 가끔 ‘세대 간의 단절, 세대 간 소통 불가’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내 또래 세대, 그리고 우리 자식 세대 사이에 왜 그렇게 생각과 감정이 다르고 그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지. 24절기가 절실히 필요했던 이들과 24절기를 책에서만 배운 이들, 그리고 24절기 따위는 아예 모르는 이들. 그러니 서로 바라보는 세상과 그 마음에 들어있는 의미는 얼마만큼 다르고 큰 것인지. 시간으로 따지면 백년의 차이가 아닐까. 대통령을 아직도 왕, 국민을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오버워치나 터닝메카드의 캐릭터가 세상을 보는 기준이 되는 이들이 여기,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글=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24절기와 백년의 간극
입력 2016-08-28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