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윤희상 <3> 고교 졸업 앞두고 “가수 되겠다” 무작정 서울로

입력 2016-08-28 18:53
운동하기 좋아했던 중학생 시절의 윤희상 집사(앞줄 오른쪽 네 번째). 학교 친구들과 태권도복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의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면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목포로 이사 오기 전까지 모범생이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전학 온 초등학교에서 2년 동안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다보니 나는 방어를 하기 위해 싸움을 많이 했다. 한마디로 문제 학생이었다. 목포 유달중학교에 입학한 뒤부턴 아예 힘 센 친구들과 어울렸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기타를 들고 노래만 부르러 다녔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공무원 생활을 접고 다른 일을 하시면서 우리 집은 변화를 맞았다. 아버지는 당시 5년제였던 목포해양전문고등학교(목포해양대의 전신)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가끔 실습용으로 배를 타셨다. 그런데 어차피 배를 탈 바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외항선을 타자고 결심하신 것이다. 외항선 회사로 아버지가 이직하면서 우리 집은 형편이 한결 나아졌다.

그뿐 아니었다. 외국에 가실 때마다 해외 제품들을 잔뜩 사 오셔서 다른 집에선 볼 수 없는 귀한 물건들이 우리 집엔 많았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집에는 TV와 전화기 등이 없었다. 드라마를 보러 오거나 잠깐 전화하기 위해 우리 집에 오는 동네 사람들이 많았다. 나의 애장품은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온 기타와 야외전축이었다. 틈만 나면 기타와 야외전축을 갖고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목포 영흥고에 입학한 뒤에는 아예 노래학원에 등록했다. 더 이상 학교 수업이 의미가 없었다. 수업을 빼먹고 학원에서 노래 지도를 받거나 가수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공부는 안하고 놀러만 다닌다며 부모님에게 매도 많이 맞았다. 어머니께서 기타를 박살낸 적도 있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부모님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학교에 등록금을 내지 않고 어머니 몰래 용돈으로 다 써버린 적도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불러 “등록금이 안 들어왔으니 부모님에게 말씀드려라”라며 당부하셨다. 그 소리에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니에게 맞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여러 약국에서 산 수면제를 먹고 자살 소동을 일으켰다. 지금 생각해도 참 한심했다.

고교 2학년 땐 학교도 모르게 노래학원을 통해 목포RMB방송국(목포MBC 전신) 전속 가수로 들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방송국에서 노래 부를 기회를 얻었다. 지금의 ‘전국노래자랑’ 같은 토요 프로그램 ‘직장대회 노래자랑’에 게스트로 나갔다. 그러나 내 분량이 통으로 편집돼 방송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방송에 나온다고 얼마나 자랑했는데,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목포에선 아무리 노래 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을 했다. ‘가수가 되려면 서울로 가서 정상적인 코스를 밟자.’ 머리 속은 오직 상경뿐이었다.

그리고 고교 졸업식을 앞두고 일을 저질렀다. 오로지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일가친척 한 명 없는 서울로 무작정 친구와 상경했다. 집안 금고에 있는 돈까지 챙겨서 말이다. 서울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는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를 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