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왜 했나… ‘죽음’으로 오너 보호? 수사 압박감? 복합적 작용

입력 2016-08-27 04:05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북한강변 산책로의 벚나무 주변에 26일 취재진이 몰려 있다. 양평=이병주 기자

재계 순위 5위 롯데그룹의 실력자인 이인원 부회장은 왜 스스로 목을 매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눈앞에 닥친 검찰 수사에 대한 중압감, 신동빈 회장 보위에 대한 부담감, 사법처리와 재판 같은 암울한 앞날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과 추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26일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게 돼 있었다. 그는 롯데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 수장으로서 신 회장 경영활동 보좌와 동시에 90여개 그룹 계열사를 총괄 관리해 왔다. 총수 일가의 횡령·배임, 탈세 등 위법 사안을 누구보다 소상히 알고 있었을 것으로 관측됐다. 이 때문에 검찰은 지난 6월 롯데 수사에 들어갈 때부터 이 부회장을 핵심 수사 대상으로 꼽았다. 지난 70여일간 중압감이 누적돼 오다 전날 직속 부하인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이 검찰에 불려나간데 이어 자신에 대한 소환 통보가 날아오자 그 강도가 증폭됐을 수 있다.

검찰은 이번 수사 초점이 총수 일가의 범죄 혐의 규명에 맞춰져 있다고 설명해 왔다. 이 부회장 역시 개인 비리 차원이 아니라 그룹 2인자로서 회장의 불법 행위에 얼마나 가담했는지를 조사하려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로서는 40여년을 보좌해 온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 회장 부자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 내부에서는 “롯데의 산증인인 이 부회장이 그룹 상황이 악화되자 ‘총체적 책임’에 대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말이 나왔다.

이는 롯데 특유의 기업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롯데 사장단은 ‘충성 경쟁’을 하듯 신 회장의 범행 연루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고 한다. 한 계열사 사장은 회사에 누가 되는 진술을 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뜻에서 바지 속에 ‘안중근’이란 석 자가 적힌 종이를 붙였다는 얘기도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어떤 수사보다 롯데 측의 증거인멸이나 수사 비협조 강도가 세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도 그룹 내 직책·역할 등을 감안했을 때 검찰에 나와 ‘모른다’고 버틸 수만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스스로 ‘완전한 침묵’을 택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증거를 아무리 확보해도 결국 ‘사람’ 수사로 이를 엮는 것이 중요한데, 이 부회장이 총수로 연결되는 다리를 자기 선에서 끊으려 한 의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자필 유서에서도 “롯데그룹 비자금은 없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적어 끝까지 신 회장과 조직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수사팀 관계자는 “자살 동기와 관련해서는 의아한 부분이 있다”며 “이 부회장이 자살을 통해 다른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개인사도 비극적 선택의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아 10년간 병간호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검찰 조사와 기소, 이후 수년이 걸릴 재판을 겪어야 한다는 자괴감 등이 겹쳐 심리적 버팀목을 무너뜨렸을 수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자살이 ‘무리한 수사’ 논란으로 비화되는 걸 경계한다. 롯데 수사는 착수 단계부터 ‘수사 장기화’ 양상을 피하려 했고, 수사 과정에서도 과하게 회사를 압박하거나 무리한 신병 확보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이 부회장 유서에도 수사에 대한 특별한 불만은 담겨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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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