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주에 갇혀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와 환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1796년 진행된 ‘정조대왕 능행차’가 220년 만에 재현된다. 오는 10월 8일 서울 창덕궁에서 출발해 노들섬∼시흥행궁∼안양역∼의왕시청사거리∼지지대고개∼장안문을 거쳐 9일 수원 화성행궁에 도착하는 46㎞ 구간의 임금 행차가 원형대로 펼쳐진다.
이 행차의 서울 구간은 서울시가, 경기도 구간은 수원문화재단이 맡는다. 행사를 한 달 남짓 앞두고 주관기관인 김승국(64) 수원문화재단 대표를 지난 23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상임부회장을 지낸 그는 지난 4월 공모를 통해 민간인으로는 처음 수원문화재단 대표로 뽑혀 화제가 됐다.
김 대표는 화성문화제 준비에 바빴다. 화성문화제는 1997년 화성행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98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수원 최대의 문화축제다. 그는 “인구 120만명의 수원에는 축제가 즐비하다. 연극축제, 국제음악제, 재즈페스티벌에 이어 열리는 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는 ‘정조대왕 능행차’”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정조대왕 능행차’의 의미를 4가지로 설명했다. “임금이 어버이를 생각하는 ‘효행’의 길이었고, 백성들이 자유롭게 능행차를 볼 수 있게 한 ‘애민’의 길이었지요. 정약용에게 설계를 맡긴 화성은 전통과 서구의 공법이 어우러진 ‘건축미’의 집약체이고, 능행차를 220년 만에 재현하는 것은 ‘미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겁니다.”
‘능행차’ 기록에 따르면 동원된 사람은 5661명이며 말이 1417필이었다. 김 대표는 “사람과 말의 수치는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46㎞ 구간과 의상 및 소품 등은 원래대로 할 것”이라며 “다만 한강을 건널 때 배를 연결해 다리를 만들었으나 여의치 않아 군의 공병대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능행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한글 컬러판을 발견했다며 복사본을 국민일보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220년 전 화성 성역의 완성을 축하하는 낙성연(落成宴)이 펼쳐졌는데 그때의 모습이 담긴 그림 ‘낙성연도’ 등이 수록돼 있는 의궤다. 국내에는 ‘화성성역의궤’ 한자 목판본 흑백판만 남아 있다.
“지난 5월 전경욱 고려대 교수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자료를 검색하다 찾아낸 거예요. 궁중 도화서 화원이 붓으로 그린 유일한 채색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아요. 한글로 기록한 것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 등 여성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구한말 프랑스 외교관이 구입해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국으로 환수되기를 기대합니다.”
김 대표는 ‘낙성연도’를 볼 때마다 한 가지 미스터리가 있었다. 그림 아래 좌우에 가설무대인 채붕(彩棚) 2개가 있는데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기에 사람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먹으로 뭉뚱그린 흑백 그림은 분간하기가 어려웠는데 컬러판을 보니 광대들이 재담과 노래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낙성연 재현에 더없이 귀중한 자료죠.”
국제대 영문과와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을 나온 김 대표는 공연·미술·문화재 등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 ‘문화계 마당발’로 통한다. 그는 “축제 외에도 SK아트리움, 행궁길갤러리, 전통식생활체험관, 어린이도서관 3곳 등을 관리·운영하는 일에 책임이 무겁다”며 “능행차를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고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오래된 미래, 따뜻한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수원=글·사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창덕궁·화성행궁 46㎞ 임금행차 원형대로 펼칠 것”
입력 2016-08-28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