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2인자인 이인원(사진) 부회장(정책본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키로 한 26일 아침 자필 유서와 함께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를 향해가던 검찰 수사도 제동이 걸렸다.
경기 양평경찰서는 이날 오전 7시11분쯤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의 한 호텔 뒤 북한강변 산책로에서 이 부회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부검 결과 ‘전형적 목맴사로 추정된다’며 타살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시신의 옷에서 운전면허증, 명함을 찾아냈고 지문 분석을 통해 이 부회장임을 확인했다. 이 부회장 곁에서 영어로 ‘롯데(LOTTE)’ 마크가 찍힌 긴 우산도 발견됐다. 휴대전화와 수첩은 없었다.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30m 정도 떨어진 식당 주차장에는 이 부회장의 제네시스 EQ900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조수석에 자필 유서와 함께 부인의 명함판 사진 1장, 넥타이들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표지 1장을 포함해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는 가족과 롯데그룹 임직원 앞으로 작성됐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 ‘롯데그룹 비자금은 없다’ 등의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전날 오후 7시쯤 서울 중구 롯데빌딩 26층 집무실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했다. 오후 8시16분 자택인 용산구 L아파트로 귀가한 뒤 오후 9시56분 지하 1층에 주차했던 차를 직접 몰고 양평으로 향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부회장의 아들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가정사까지 겹쳐 많이 힘들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롯데그룹 측은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롯데의 기틀을 마련한 이 부회장이 고인이 됐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은 보고를 받은 뒤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 채 애통해했다고 한다.
70여일간 진행된 롯데그룹 비리 수사는 ‘핵심 피의자의 자살’이란 암초를 만났다. 검찰은 소진세(66)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 황각규(61) 정책본부 운영실장을 잇따라 조사한데 이어 이 부회장을 이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로 조사할 계획이었다. 이들 ‘가신 3인방’을 조사한 다음엔 신격호(94) 총괄회장, 신동빈 회장, 신동주(62) SDJ코퍼레이션 회장 등에 대한 수사가 예정돼 있었다. 43년간 롯데에 몸담은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는 비자금 조성, 탈세, 횡령 등 각종 혐의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총수 일가로 올라가던 수사의 ‘연결고리’가 사라졌다. 검찰은 수사 계획이나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 일정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면서도 “두 달 반을 수사하면서 많은 증거를 확보한 만큼 신 회장의 혐의 입증 등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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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민 지호일 정현수 기자 양평=김판 기자 suminism@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롯데 의혹 ‘핵심 고리’ 사라졌다
입력 2016-08-26 17:58 수정 2016-08-26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