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건너편 주유소가 있던 자리에 아담한 한옥 한 채가 들어섰다. 오는 9월 1일 공식 개관하는 서울돈화문국악당이다. 지난 6∼7월 시범공연을 거쳐 막바지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한옥 마당 아래 지하 2∼3층에 자리잡은 공연장은 총 140석으로 내부가 전통 창호로 마감돼 있다. 이 공연장은 국악 본연의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마이크와 스피커를 일절 쓰지 않는 ‘자연음향’을 추구한다. 덕분에 관객은 연주자 바로 앞에서 국악의 섬세한 선율을 들을 수 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최근 자연음향을 추구하는 국악계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사례다.
국악은 근대 이후 서양 음악의 영향으로 서구식 극장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양악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량과 울림이 작은 국악기는 서구식 극장에 맞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악 공연에서 소리를 객석까지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국악평론가 송현민은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한때 국악기에 대한 잘못된 열등감과 정책 때문에 음량을 키우는 국악기 개량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전통적인 국악은 원래 대규모 궁중 연희를 제외하곤 ‘풍류방(風流房)’ 또는 ‘율방(律房)’이라고 부르던 사대부나 중인층의 사랑방에 가객을 초청해 음악을 즐기는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국악계에서는 꾸준히 국악기 특성에 맞는 전문 공연장을 요구해왔다.
이에 따라 2007년 처음으로 자연음향을 표방한 국악 전용 공연장인 서울남산국악당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점점 마이크와 스피커를 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자연음향이라는 취지가 흐려졌다. 다만 2014년부터 기획공연에 한해서 자연음향을 고집하고 있다.
국립국악원도 2013년 130석 규모의 자연음향 극장인 풍류사랑방을 개관했다. 풍류사랑방은 신을 벗고 방석 위에 앉는 객석으로 되어 있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은 “마이크나 스피커를 쓰면 국악 소리가 왜곡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악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연음향이 적합하다”면서 “최근 국악계에서 자연음향 공연장이 잇따라 문을 여는 것은 전통적인 ‘율방 문화’의 부활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은 올들어 또다른 공연장인 우면당도 자연음향으로 바꾸는 공사에 들어갔다. 11월 재개관하는 우면당은 320석의 객석이 231석으로 줄어드는 한편 무대 밑에 공명용 통이 설치돼 소리의 울림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4인 이하 연주자들이 서는 100석 규모의 소극장과 달리 수십명까지 등장하는 정악과 국악관현악이 연주되는 중대형 극장에선 그동안 악기마다 마이크를 달았다. 하지만 국립국악원은 요즘 자연음향에 맞는 국악관현악 악기 편성 연구를 통해 개선안을 찾고 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도 2013년 황준연 단장 취임 이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같은 초대형 공연장에 설 때와 관현악단과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협연자 악기에만 마이크를 다는 것을 제외하곤 생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가야금 명인인 이지영 서울대 교수는 “현재 국악계에서 자연음향을 구현하는 공연장이 잇따라 만들어지고 있어 반갑다”면서 “아직 음향 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지만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마이크도, 스피커도 없다 生音으로 승부한다… 여긴 국악 전용 공연장
입력 2016-08-28 22:01 수정 2016-08-29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