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지금은 남아돌아 걱정이라지만 수십년 전만 해도 먹기 쉽지 않은 ‘주식’이었습니다. 먹는 입(食口·식구)이 많은 데다 단위면적당 소출이 적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형편이 나은 집은 찹쌀이나 입쌀(멥쌀), 율무, 콩, 깨 등을 찌거나 볶아 가루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미숫가루’이지요. 시골에선 보통 초여름 보리 바심을 하면 꺼칠한 보리로 보릿가루를 만들어 단맛 내는 ‘당원’을 녹인 물에 타서 마시곤 했습니다.
미숫가루는 80년대 말 맞춤법이 개정될 때까지만 해도 미시가루, 미싯가루, 미수가루, 미숫가루 등으로 불렸습니다. 그때 미숫가루가 표준어가 되었지요.
미숫가루의 옛말은 ‘미시’입니다. 1527년 간행된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에 미시라는 말이 나옵니다. 미시가루, 미싯가루라고 했던 이유 같습니다. 그 후 ‘미수’로 변해 설탕물이나 꿀물에 미시를 탄 여름철 음료를 이르는 말이 됐습니다. 한자어 ‘미식’이 미수와 같은 뜻인데 미시, 미수라는 말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곱게 간 쌀가루를 물에 타 먹는다는 뜻입니다.
미시(미수)가 쌀 같은 곡식을 볶아 가루로 만든 것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사실 미숫가루는 ‘역전앞’ ‘처가집’(처갓집은 표준어가 됐지만)처럼 겹친 말입니다.
어문팀장 suhws@kmib.co.kr
[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곡식을 볶아 가루로 만든 ‘미숫가루’
입력 2016-08-26 17:59 수정 2016-08-27 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