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훈의 컬처 토크] 위대한 노래 한 곡

입력 2016-08-26 20:38 수정 2016-08-26 20:44

“위대한 노래 한 곡이죠”(One great song!) 얼마 전 임진모 음악평론가와 대화에서 음악계가 활성화되기 위한 가장 효율적 방법에 대한 결론이었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의 노래가 있다. 노래는 단지 사람들의 여흥을 위한 삶의 양념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서와 정신이 담겨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잊었던 옛 노래를 듣게 되면 시간을 거슬러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22일 크리스천 싱어송라이터들이 함께 모여 일일 수련회를 가졌다. 필자와 함께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와 YB의 베이시스트 박태희가 강사로 나서 참여자들과 우리 시대에 만들고 불러야 할 크리스천 음악의 방향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음악으로 먹고 살기 힘든 현 시대에 싱어송라이터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필자가 제안한 답은 바로 ‘위대한 노래 한곡’이다. 그저 나만 좋아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대중의 감각적 입맛에만 맞춘 노래가 아니라, 시대와 함께 공명할 수 있는 노래 한 곡에 음악인생을 걸어보자는 말이다. 하덕규와 박태희, 이 두 아티스트가 바로 이 위대한 한 곡을 남긴 것처럼 말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가시나무’가 전하는 처연한 감정은 비종교인들의 마음까지 경건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이 노래는 잘 알려진 대로 복음이 담긴 노래이다. 하덕규는 이 노래가 철저한 죄성에 무너진 자신과 시대를 바라보며 절절하게 부른 애가라고 고백한다. 그가 얻은 정답을 밝히지 않지만 구도자가 회심 바로 직전에 던진 절망을 담아낸 이 시대의 로마서 7장 24절(“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이 아닐까. 다윗의 시편이 그러하듯, 우리는 때론 정답이 아닌 질문을 말하며, 맘 아픈 이웃과 함께 부를 애가 한 곡이 절실하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이 노래는 애벌레와 번데기 시절을 극복하며 꽃들의 사랑을 전하는 아름다운 나비의 길을 제안한다. 윤도현과 함께 록밴드 YB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박태희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대의 아파하는 사람들의 좌절을 보며 기도하면서 이 희망가를 만들었다. 처음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제 “나는 나비”는 YB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송’이 되었다. 우리에겐 지금 지친 이웃과 함께 부를 위대한 희망가 한 곡이 필요하다.

이제 곧 새 학기가 시작된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은 어떤 노랫말에 공감하며 살고 있을까? 얼마 전 이화여대 시위 현장에서 학생들은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데모가(?)’로 함께 불렀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여전히 의미 있는 자신들의 노래를 발랄하게 함께 부르고 있음에 참 흐뭇했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이전엔 무심코 흘려버린 이 노래의 가사가 왜 이리도 절절하게 느껴지는지….

오늘도 무명이지만 열심히 자신의 음악세계를 꿈꾸며 노래하는 크리스천들 뮤지션들이 교회와 사회에서 함께 공감하며 부를 수 있는 위대한 노래 한 곡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금 우리는 이런 노래 한 곡이 정말 그립다.

<윤영훈 빅퍼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