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머니, 한류를 쥐락펴락

입력 2016-09-03 04:02

국내 엔터테인먼트산업 전반을 휘젓고 있는 ‘큰손’이 있다. 중국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중국 기업이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체에 투자하거나 인수·합병에 쓴 금액이 1억6130만 달러(약 1803억원)에 이른다. 2015년 한 해 동안 중국에서 투자한 액수(1억1080만 달러)를 이미 크게 넘어섰다.

한국 업체에 투자하는 중국 기업들은 화끈한 자본력으로 사업 확장에 힘을 실어주고 가장 큰 한류 시장인 중국 진출 통로를 넓혀준다.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레드 머니’(Red Money·중국 자본)의 매력을 쉽게 포기하지 못 하는 이유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 레드 머니가 물밀 듯 밀려오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나온다. 한류로 번 돈이 결국 중국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라는 우려, 고급 인력과 노하우 유출 문제, 자본 종속 심화로 한류 자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 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자본의 변심이 한류 열풍을 한순간에 꺾어놓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걱정은 최근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반도 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 자본이 투입된 업체마다 주가가 떨어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주가가 지난달에만 15%가량 빠졌고, YG엔터테인먼트도 7∼8월에 걸쳐 주가가 15% 정도 떨어졌다. 한·중 관계 경색이 한류 쇠퇴와 중국 자본의 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류 자체에 대한 압박도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국 연예인이나 기획사 등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인 규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중국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분야를 담당하는 광전총국이 다음달부터 자국 내 자치성 방송사에 한류 스타 출연을 금지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중국 언론들도 한류 스타가 중국 활동에 제재를 받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8월 들어 다소 잠잠해지는 듯하더니 다시 한류에 대한 압박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 영문판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중국 장쑤TV에 출연한 아이콘의 출연 장면과 싸이의 뮤직비디오 장면이 편집되거나 흐릿하게 처리됐다.

앞서 중국 시장을 겨냥하고 사전 제작한 KBS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중국 팬미팅이 개최 사흘 전 중국 측의 갑작스러운 통보로 무기한 연기됐다. 중국에서 가장 핫한 한류 스타 송중기도 드라마 출연 계약이 불발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중국 진출에 나섰던 업체들 중에는 “앞으로 몇 달 동안 한국 가수 섭외는 없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불안정성이 계속되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예견된 일’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은 몇 년 전부터 한류 확대를 경계하면서 자국 문화산업 육성에 적극 나섰다. 한국 기업과 적극적으로 손잡으면서도 중국 본토에서 한류의 입지를 좁히기 위해 새로운 규제를 계속 적용시켜왔다. 사드 배치는 중국이 한류 압박을 본격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미디어연구소 박상호 연구팀장은 “국내에서는 중국 자본의 힘이 커지는 반면 비대칭적 규제 환경으로 국내 콘텐츠가 중국에 진출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글=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