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호의 골목길 순례자-출입문] 남녀 차별 없었던 옛 예배당 출입구

입력 2016-08-26 20:40 수정 2016-08-26 20:43
남녀성도들이 좌우 출입문으로 따로 출입했다.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 출입문(위), 오웬기념각 출입문.
최석호 목사·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출입문은 사유재산과 사생활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2014년 서울중앙지법은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는 아파트 이웃간 다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현관문을 두드려서도 안 되고, 집에 들어가서도 안 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문을 열었다’고 표현하고 하던 일을 중단할 때 ‘문을 닫았다’고 말한다. 문은 시작과 끝, 성공과 실패를 뜻한다. 그래서 열쇠는 성공을 상징한다.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 닫힌 문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1885년 제물포에 도착했다. 1897년 아펜젤러는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을 봉헌했다. 성공과 개혁에 대한 열망으로 뜨거웠던 배재학당 학생들과 남성은 왼쪽 문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 가득했던 이화학당 학생들과 여성들은 오른쪽 문으로 출입했다.

1904년 12월 25일 광주 양림동에서 유진벨과 오웬 목사는 성탄절 예배를 드렸다. 1906년 ‘ㄱ’자 모양 교회를 신축하고 북문안교회라 불렀다. ‘ㄱ’자 모서리에 강대상을 설치하고 좌우 끝에 출입문을 냈다. 한국식 팔작지붕에 중국식 회색벽돌을 쌓고 서양식 출입문을 달았다. 남녀출입문을 달리한 것이다. 1909년 폐렴으로 사망한 목사이자 의사였던 선교사 오웬을 기념하는 오웬기념각을 1914년에 완공했다. 하루 종일 걸어서 찾아온 조선성도들이 성경공부를 마치고 추위에 떨면서 노숙하는 것을 마음 아파했다. 할아버지 이름으로 된 건물을 짓고 싶었다. 살아서 못 이룬 꿈을 이뤘다. 오웬기념각이다. 할아버지 오웬과 선교사 오웬을 기념하는 건물이다. 사각형 건물 모서리에 강대상을 놓고 좌우 출입문을 통해 남녀성도들이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좌우출입문의 모양과 크기가 동일하다. 남녀차별하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교회 초기 이 땅에 온 선교사들은 조선사람들이 쉽게 들어 올 수 있도록 예배당 출입문을 하나 더 만들었다. 여성을 위해서였다. 낯선 세계로 들어오기 힘든 사람을 배려한 것이다. 두 문을 똑같이 만들었다. 남녀차별을 철폐한 것이었다. 예배당 출입문 안에 있는 세상은 새로운 세상이다.

<최석호 목사·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