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채수일] 꿈도 사치인 시대의 꿈

입력 2016-08-25 17:37

1963년 8월 28일, 그러니까 꼭 53년 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25만명의 청중이 모인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이 한 편의 연설로 킹 목사는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과 함께 현대 미국을 만든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연설과 흑인들의 거대한 행진 결과 작은 변화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설을 한 지 5년 후, 1968년 4월 킹 목사는 암살당했습니다. 그의 나이 39세였습니다. 지금은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 된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도 킹 목사의 꿈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서의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아직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은 것들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삶이란 현실이 아닌 꿈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살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믿음’은 인간인 우리가 소유할 수 있거나, 하나님을 우리 뜻대로 강요할 수 있는 인간적 노력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을 수 없고,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믿음의 근거는 우리 자신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안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희망의 근거도 우리가 가진 능력이나 잠재력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꿈이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믿음의 사람은 실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 있으나,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꾸는 꿈은 깨질 수 있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은 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 사랑은 확실하고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이 사랑을 유지하시고 자신의 약속에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면 하나님은 우리 꿈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꿈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과 하나가 될 때 그 꿈은 위대한 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창한 꿈은커녕 아주 소박한 꿈조차 이룰 수 없는 나라, 아니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 ‘헬 조선’은 오히려 자기들이 만들어 놓고 부끄러움은커녕 뻔뻔하기조차 한 권력층, 국민 다수를 개나 돼지로 보는 특권층이 형성한 새로운 신분제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꿈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꿈같은 헛소리임이 분명합니다.

오래전 독일 친구가 독일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재미도 없는 지옥 같은 곳에서 꿈조차 사치스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히브리서는 믿음 없이는 어떤 꿈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증언합니다.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가 테리 이글턴이 말한 ‘낙관주의 없는 희망’과 ‘희망에 대항하는 희망’, 그리고 거짓 혹은 사이비 희망을 비신화화하는 힘은 오직 세상질서를 역전시키시는 하나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채수일 경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