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준엽] 노트7 인기의 의미

입력 2016-08-25 19:01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은 지난 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갤럭시 노트7 언팩 행사에서 소프트웨어(SW)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질문에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사장의 리더십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고 사장이 올해 초 무선사업부를 맡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상명하복, 수직적인 조직문화로 대표되던 삼성전자가 이전보다 유연하고 수평적 소통이 이뤄지는 조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고 사장은 아랫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유럽연구소장으로 있을 때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 그는 “SW는 2년 한 사람이 15년 한 사람보다도 뛰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지켜본 결론이 그렇다고 했다. 중요한 건 능력이지 연공서열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무선사업부에서는 개발 업무를 하는 직원이 마케팅에 대해 묻는 등 다른 영역의 궁금증에 대해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남의 영역을 건드리는 건 예전엔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고 사장은 매주 금요일 직원들의 궁금증에 답해주는 시간을 갖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갤럭시 노트7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색상으로 평가받고 있는 블루 코랄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관습대로라면 검은색과 흰색을 출시하는 게 순서지만 젊은 직원들이 블루 코랄을 원했고 경영진이 이를 받아들였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새로운 조직문화 패러다임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현장에서 지휘하는 건 고 사장이지만 고 사장을 임명한 건 삼성전자 고위 경영진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삼성전자가 어려움을 겪은 건 역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가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십 년간 삼성전자를 지탱해온 전략은 ‘패스트 팔로워’였다. 1등 뒤에서 빠르게 따라가면 됐다. 창의력과 개성을 갖춘 인재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보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이끄는 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더 유효했다. 이런 전략이 오늘날의 삼성전자를 있게 했지만 어느새 세계 1위가 된 삼성전자에 더 이상 맞지 않는 옷이기도 했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소니를 비롯한 일본 업체를 제압한 삼성전자는 이제 중국 업체들에 같은 도전을 받고 있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는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갤럭시S5 이후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예상이 나왔던 것도 오랜 기간 쌓인 문화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삼성전자가 보여주는 모습은 미래에도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캐너코드 제뉴이티에 따르면 지난해 스마트폰 시장 이익의 91%를 애플이 가져갔다. 삼성전자는 9%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2분기에는 애플이 75%, 삼성전자가 31%로 격차가 줄었다. 올해 나온 갤럭시S7, 노트7 등이 비싼 돈을 주고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게 수치로 증명된 것이다.

노트7의 초반 돌풍이 반가운 것은 단순히 판매량이 많아서가 아니다. 노트7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보이는 삼성전자의 변화 때문이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