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안단테, 안단테

입력 2016-08-25 17:38

처음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다. 나는 가장 한적한 길을 골랐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가본 곳은 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너무 북적이는 길로는 들어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늘 자신을 보호하고 두둔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다.

어쩌면 가장 멋있어 보이는 길을 선택했을 수도 있고, 남들이 가장 쉽다고 하는 길로 들어섰을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갔을 수도 있다. 사실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던 게 아니라, 나에게 열린 단 하나의 길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걷다 보니 길을 잃은 것 같다. 언젠가 먼 옛날 누구인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찾으라고 속삭였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중요한 것이고, 좋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보물찾기를 하고 있었나 보다. 숲속을 헤맨다. 바람이 지나가며 나뭇잎을 흔든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빛과 그늘이 뒤섞인다. 풀숲과 덤불을 헤치고 걷는 동안 신발이 젖는다. 마침내 숲을 빠져나간다.

지금부터 가장 재밌는 부분이 시작될 것인가. 기대와 달리 해가 지기 시작한다. 벌써? 아름답고 중요하고 좋은 것을 찾지도 못했는데,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고, 보고 싶은 것은 하나도 보지 못했는데? 어두워지다니, 이 영화 대본은 누가 쓴 거지?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해피엔딩이 올 때까지 해가 지면 안 되는 거잖아.

지나온 숲을 뒤돌아본다. 아직 빛이 찬란할 때 냇가에 발을 담그고 앉아 바람을 느껴볼 것을. 꽃을 바라보고 나무줄기를 끌어안아볼 것을. 길을 찾으면, 보물을 얻으면 그때 마음껏 할 수 있을 거라고 뒤로 미루고 지나쳐온 일들이 아쉽다. 아쉬움이 시작되는 순간 미래는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클라이맥스 같은 건 아예 없는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빛 속의 모든 순간들을 다만 해피엔딩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도. 혼잣말을 하며 계속 걸어간다. 안단테, 안단테.

부희령(소설가)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