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7500억 공연시장 ‘환불 분쟁’ 급증

입력 2016-08-25 04:25

‘공연 품질’을 두고 분쟁이 빈발하고 있다. 여름 음악페스티벌 등 공연 시장이 8000억원 가까운 규모로 커지면서 질 낮은 공연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소비자 신고가 급증했다. 관객들은 거세게 환불을 요구하기도 한다. 반면 공연기획사 등에선 ‘블랙 컨슈머’ 때문에 속을 앓고 있다고 반박한다.

공연기획사 직원 조모(27)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가수의 전국콘서트 투어를 다 본 관객이 “가수가 노래를 너무 못한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조씨는 “규정에 따라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설득했지만 항의는 끈질기게 이어졌다. 결국 그 관객은 티켓값 13만5000원을 받고 나서야 돌아갔다.

이런 일은 공연업계에서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공연을 다 관람하고 환불해 달라고 하는 일은 흔하다”며 “오전부터 밤까지 진행되는 음악페스티벌을 다 즐기고 나서 입장한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거나 콘서트 입장 시간에 늦고는 공연이 왜 이렇게 칼 같이 시작하느냐며 환불을 요구하는 관객도 있다”고 전했다.

반대로 소비자들은 공연이 부실하거나 관람 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인 피아니스트 ‘윤디 리’의 내한 공연 때 음표를 빼먹거나 박자를 건너뛰는 등 실수가 이어졌다. 관객 50여명은 공연기획사 측에 항의하며 환불을 요구했다. 이 가운데 1명은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까지 접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예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결 같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직장인 최모(29)씨도 씁쓸한 경험을 했다. 지난달 록페스티벌 공연장에서 사먹은 음식 때문에 며칠간 배탈로 고생을 했다. 날씨가 무더운데도 그늘막은 부족했고, 셔틀버스는 제대로 운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소비자와 공연기획사의 잦은 충돌은 피해신고로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원은 각종 공연관람 피해구제 접수가 2010년 26건에서 지난해 76건으로 껑충 뛰었다고 24일 밝혔다. 시장이 성장하는 만큼 소비자 불만도 늘고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4년 공연시장 규모는 7539억원에 이른다. 여름철에 유행하는 ‘음악페스티벌’은 2008년 12개에서 2013년 34개로 늘었다.

하지만 피해구제 신청 중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합의가 성립된 것은 절반에 못 미친다. 합의 성립률은 2013년 48%, 2014년 43%, 지난해 47%에 그쳤다.

일반 상품처럼 품질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갑작스러운 출연진 교체나 공연 취소 등 공연업자의 ‘계약 불이행’으로 소비자가 환급을 요구할 경우에 입장료 전액은 물론 입장료의 10%를 추가 배상토록 한다. 이미 완료된 공연의 품질을 둘러싼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잣대’는 없다.

소비자원 서비스팀 관계자는 “공연이 불만족스럽다는 평가는 개인 취향 등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에 피해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예율의 허윤 변호사는 “공연이 불만족스럽다는 이유만으로는 귀책사유가 인정되기 어렵다”며 “다만 공연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다수의 의견이 모이면 문제제기는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