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45㎞ 안팎의 직구는 볼 끝의 움직임이 살아있다. 주무기였던 포크볼은 더 예리해졌다. 이 공에 속은 타자들은 헛스윙의 아쉬움과 함께 다음 타석을 준비한다. 반년 만에 돌아온 ‘에이스’ 앤디 밴헤켄(37·넥센 히어로즈)이 성공적으로 한국무대 적응을 마쳤다. 사실 적응할 것도 없었다. 지난 4시즌 동안 한국에서 보여줬던 ‘1선발의 품격’, 그 모습 그대로였다.
밴헤켄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120경기에 출전해 58승32패 평균자책점 3.54의 성적을 거둔 넥센의 대표 투수였다. 2014시즌엔 20승 6패로 다승왕을 차지했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즈로 이적해 새로운 꿈을 키웠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혹평을 받은 채 짐을 싸야 했다. 일본야구에 빨리 적응하지 못했고, 구속은 떨어졌다.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제구력마저 흔들렸다. 2군을 전전하던 그는 지난달 15일 세이부로부터 최종 방출 통보를 받았다. 사유는 ‘기량 미달’이었다. 에이스였던 그의 부진과 방출은 퍽 충격적이었다.
그런 그에게 친정팀 넥센은 위험부담을 떠안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 그리고 일본리그 평균자책점이 6점대였다는 걸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게다가 1군 출장이 적어 실전감각이 무뎌졌을 거라는 걱정까지 겹쳤다.
밴헤켄은 계약금과 연봉 ‘0원’에 옵션 10만 달러 계약을 체결하고 친정에 복귀했다. 다행히 그를 강력히 원했던 넥센 염경엽 감독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한국 복귀 후 선발로 다섯 차례 등판한 밴헤켄은 4승 무패로 펄펄 날았다. 평균자책점은 0.84에 불과하다.
투구 내용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직구는 경기를 거듭할수록 예전의 구속과 제구력을 되찾고 있다. 또 타자 앞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는 포크볼을 결정구로 던져 삼진을 잡고 있다. 결정구냐 유인구냐에 따라 공을 잡는 그립을 달리해 각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지난 21일 삼성전에서는 탈삼진 11개를 기록했다. 삼진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타구를 땅볼로 유도해 아웃카운트를 채웠다.
덕분에 넥센 마운드는 한층 안정감을 더해 리그 3위를 지킬 완벽한 발판을 마련했다. 13승으로 고군분투 중인 신인투수 신재영에 이어 밴헤켄의 가세로 원투펀치를 구축했다. 여차하면 2위도 노려볼 기세다. 또 포스트시즌까지 치른다고 가정하면 밴헤켄의 풍부한 경험이 가을야구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게 하나 더 있다. 넥센은 밴헤켄이 선발로 등판한 다섯 경기에서 모두 이겼다. 밴헤켄의 등판은 곧 승리라는 공식이 생긴 셈이다. 벤헤켄은 4승째를 거둔 뒤 “한국이 일본보다 더 편안하다. 포수 박동원이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오랜 기간 호흡을 맞췄던 파트너와의 재회, 그리고 친정팀에서 심적 부담감까지 떨쳐버린 그는 다시 에이스로 거듭났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프로야구] 반년 만에 돌아온 ‘연봉 0원’짜리 에이스 밴헤켄, ‘넥센 제1 선발의 품격’ 드러내다
입력 2016-08-2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