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윤희상 <1> 교통사고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게 해준 ‘터널’

입력 2016-08-24 20:33
찬양사역자 윤희상 집사는 “트로트 가수로 화려한 인생을 살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만났다”며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나는 새벽에 통증으로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 “하나님 저를 이만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한다. 온 몸이 통증으로 쑤시지만 나를 주님께 온전히 맡기니 마음은 평안하기만 하다.

12년 전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심각하게 망가져 목 이하 부위를 자유롭게 움직이기 힘들다. 사고 당시 광대뼈와 콧대는 함몰됐고, 각막 파열과 경추 5∼6번 골절로 ‘척수장애 1급’ 진단을 받았다. 사지마비로 손과 발이 뒤틀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서기 힘들다. 밤에는 육체의 고통과 더 싸워야 한다. 낮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활동하면서 아픈 것을 자연스럽게 잊을 수 있지만 고요한 밤엔 통증이 더 크게 느껴진다. 통증은 당연하다는 듯 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통증은 내 삶에 조금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항상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이후 육체·정신·영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에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이 이전 화려했던 때보다 더 행복하다.

나는 잘나가는 가수였다. 젊었을 때 멋 부리기 좋아하고 세상 노래를 부르며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줬다. 오랜 무명생활을 거쳐 2000년 초반 ‘카스바의 여인’이란 트로트 곡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많은 돈을 벌었고 유명해졌다. 어릴 때부터 가수의 꿈을 갖고 살아온 내가 가수로서 누릴 수 있는 정점을 찍었다. 그땐 세상이 다 내 것인 듯 교만하게 살았다.

그러나 화려한 순간은 잠깐이었다. 2004년 교통사고 후 세상을 포기하고 죽을 날만 기다렸다. 어떻게 죽을까 생각하며 피폐해진 나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되돌아보니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게 해준 축복의 통로였다.

노래하는 게 가장 즐거웠던 나는 사고 후 의학적으로 노래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찬양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남겨주셨다. 2011년부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로 무대에 서게 됐다. 평생 식물인간처럼 누워 살아야 하는데 간증과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은혜를 주신 것이다. 한 달에 두 차례씩 크고 작은 교회 등에서 찬양집회를 하는데 간증하고 찬양하다 보면 어느새 집회 장소는 눈물바다로 바뀐다. 나처럼 질병으로 지친 사람, 사업 실패로 피폐해진 사람, 돈은 많지만 마음이 외로운 사람 등이 나의 간증을 듣고 위로와 도전을 받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본 뒤 회개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나는 희망을 주는 찬양사역자가 되고 싶다. 2010년에 발표한 복음성가 ‘나의 하나님 아버지 앞에’의 마지막 구절은 주님을 향한 나의 고백이다. “살아도 죽어도 이 몸은 주님 것∼.”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약력=△1955년 전남 완도 출생 △목포 영흥고 졸업 △1979년 ‘칠갑산’으로 가요계 데뷔, 트로트 곡 ‘카스바의 여인’(2000년) ‘텍사스 룸바’(2002년) ‘파티’(2007년) 발표 △복음성가 ‘나의 하나님 아버지 앞에’(2010년),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1·2집’(2015년) 발표 △한국대중가요협회장 역임 △서울 광명그리스도의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