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성(62·사진) 전 산업은행장이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임명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비선조직에 속해 있다”고 주장했던 사기범죄 전력자와 해외투자 법인을 공동 설립해 지금껏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 전 행장과 동업한 이는 정·관계 고위 인사들과의 친분을 내세워 인사청탁 명목의 돈을 챙겼고, 이민 알선업체를 운영하며 위조여권을 써 각각 유죄가 선고된 이력이 있었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민 전 행장과 관련한 여러 의혹을 넓게 살펴보는 중이다.
민 전 행장은 2013년 11월부터 현재까지 기업컨설팅 용역사업, 해외 신규사업 진출 컨설팅 등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 M사의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이 회사는 민 전 행장이 운영한 사모펀드 운용사 티스톤, 나무코프 등과 유사한 사업목적을 띠고 있다. 그런데 민 전 행장과 같은 날 M사 사내이사에 취임한 M그룹 회장 한모(41)씨는 특경가법상 사기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된 상태였다.
그는 세계적인 그룹의 회장으로 행세하며 서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의 대통령·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대한민국 정부가 대외경제협력기금을 지원토록 해 개발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말해 환심을 샀다. 한씨는 이를 토대로 국내 정·관계 고위층에 접근한 뒤 친분을 과장해 피해자들에게 “공사수주·공기업 사장 선임을 성공시켜 주겠다”는 식으로 약속해 수억원을 받았다. “서아프리카 국가의 발주 사업을 수주해 많은 이익을 얻게 해주겠다”고도 말해 거액을 뜯어냈다.
한씨의 피해자들은 당시 한씨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재선을 위해 아프리카 지역 표가 필요하다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자금을 만드는 비선조직 ‘작업반’이 있는데, 거기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모든 인사를 다 한다.”고 과시했다고 진술했다. 한씨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를 범죄사실로 인정했다. 한씨에겐 기금 유치 능력이 없고, M그룹은 국제적 영업망을 갖추기는커녕 건물 임대료를 미납, 보증금마저 없어진 처지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지능적이고 죄질이 불량하며, 서아프리카 국가들과 대한민국 사이의 외교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민 전 행장이 한씨와 M사를 공동 설립한 시기는 대법원이 한씨의 유죄를 확정한 지 불과 1년여 만이었다. 국책은행장 출신이 사기 판명 그룹의 관련 법인 신설·경영에 뛰어든 건 이례적이라는 시각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업성이 매우 뚜렷하더라도 고위 공직자인 국책은행장을 지낸 이의 행동으로는 일반적이지 않다”고 평했다.
민 전 행장은 23일 “한씨에게 전과가 있다고 해서 국책은행장 출신과 비즈니스를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고 밝혔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변호사를 통해 충분히 파악한 뒤 동업을 결정했다고 민 전 행장은 설명했다. 법원에서도 사업 실현 가능성을 희박하게 평가받은 M그룹이지만, 민 전 행장은 “장기적 안목으로 아프리카 진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했다.
이경원 양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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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성의 이해 못 할 행보… 사기범죄 전력자와 동업 중
입력 2016-08-24 00:08 수정 2016-08-24 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