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근대식 등대가 세워진 것은 1903년 4월. 인천항을 드나드는 배들이 암초에 부딪히는 사고가 빈번하자 일본이 조선에 주요 항로와 항만의 수로 측량을 강권하면서 설치됐다. 같은 해 6월 1일 첫 불을 켰다. 외세의 손을 빌려 세워졌지만 인천항 개항 이후 해상교통의 중요 기능을 담당하며 질곡의 한국 근현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인천시 지방문화재 제40호로 그 자리에 보존돼 있다.
현재 바다를 비추는 등대는 2003년 12월에 새로 만든 것이다. 등탑 높이 31m에 회전식 등명기가 50㎞까지 비추며, 10초에 한 번씩 빛을 발한다. 원통형 기둥 상단에 비행접시 모양으로 설계된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은 등대 외에도 전망대와 디오라마 영상관, 100주년 기념 상징 조형물 ‘천년의 빛’, 위성항법보정시스템(DGPS) 기준국 시설과 첨단 장비를 갖췄다.
요즘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흥행과 함께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50년 9월14일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는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의 작전 명령을 받은 대북첩보부대(켈로부대)가 투입된다. 상륙작전이 성공하려면 월미도에 진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인천항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비추는 팔미도등대부터 점령해야 했다. 이들은 9월 14일 밤 팔미도에 숨어들어 등대를 점령하고 자정에 불을 밝힌다. 이로써 연합군이 팔미도 해역에 집결할 수 있었고, 상륙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1969년 박노식, 장동휘, 허장강 등이 나온 ‘결사대작전’은 팔미도 상륙작전을 영화화한 것이다.
팔미도는 군사적 이유로 오랫동안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다가 2009년 개방됐다. 팔미도등대 여행은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시작한다. 유람선은 연안부두와 팔미도 사이를 왕복 운항한다. 편도 약 1시간 걸린다. 팔미도를 오가는 시간을 포함해서 등대 여행에 2시간 30분 정도 잡으면 된다. 금붕어가 배를 삼키는 듯한 모양의 배는 연안부두를 떠나 천천히 수면을 미끄러지며 서쪽 바다 한가운데로 향한다. 배는 인천대교 밑을 지난다. 바다를 가로질러 끝없이 이어진 부드러운 곡선의 다리가 장관이다. 총 연장 21.38㎞에 달하는 인천대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다. 배가 통과하는 주탑 높이가 238.5m인데, 이는 63빌딩 높이에 육박한다. 규모 7의 지진과 초속 72m 강풍도 견딜 수 있는 내구성도 갖췄다.
팔미도에 도착하면 문화해설사가 등대와 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문화해설사를 따라 등대와 섬을 돌아볼 수 있고, 혼자서 여행해도 된다. 선착장에서 등대가 있는 정상까지 10여 분 걸린다. 가는 길에 팔미도등대와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한 연합군이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의 벽화가 반긴다.
이를 지나면 곧 ‘천년의 빛’ 조형물이 나온다. 팔미도등대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가운데 등대 모양 조형물이 있고, 그 주위로 빛기둥 100개가 하늘을 향해 뻗어간다. 앞으로 다가올 천년 동안 팔미도등대가 변함없이 우리나라의 이정표가 되길 염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이어 작고 아담한 건물을 만난다. 옛 등대 사무실을 보존한 것이다. 10∼13㎡ 방에 당시 사용하던 다양한 장비와 등대지기 마네킹이 있다.
해발 58m 언덕 위에 올라서면 등대 두 개가 나타난다. 왼쪽에 작은 것이 ‘원조’ 팔미도등대다. 지름 2m, 높이 7.9m로 2∼3층 높이에 불과하다. 원형 복구를 위해 11월까지 공사중이다. 흰색 페인트가 벗겨진 옛 등대에서는 화강암 등탑 위에 구리와 주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등롱이 옛 모습을 드러냈다.
옛 등대 뒤로 새 등대가 있다. 옛 등대는 100년 동안 바다를 비추다가 2003년 새 등대에 임무를 넘겨주고 은퇴했다. 4층 하늘정원 전망대에서는 광활한 서해를 굽어볼 수 있다. 맑은 날이면 무의도를 비롯해 자월도, 영종도, 영흥도, 선재도, 대부도 등 서해에 있는 섬이 손에 잡힐 듯 바라보인다.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송도국제도시도 눈에 들어온다.
1950년 9월 15일 새벽 팔미도등대의 길안내로 7만5000명의 연합군은 월미도로 향한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상륙 자체가 쉽지 않아 성공 확률 5000분의 1로 평가된 ‘크로마이트’ 작전이 전개된다. 월미도 해변 ‘그린비치(Green beach)’가 1차 공격지. 이어 같은 날 오후 블루비치, 레드비치 상륙이 이어진다. 당시 수많은 인명 희생을 낸 월미도는 지금 월미공원으로 조성됐고 그린비치는 해변이 아닌 육지가 됐다. 당시를 기억하는 비석이 역사를 증언해준다.
월미공원에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포탄을 이겨낸 나무인 ‘월미 평화의 나무’가 있다. 수령이 70년 이상 길게는 245년 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등 7그루로, 포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공원 내 전망대는 인천항, 팔미도등대, 송도신도시, 인천대교 등 전쟁의 상흔을 딛고 세워진 지금의 인천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인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