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정치권·경찰까지… ‘진실 공방’ 막장극

입력 2016-08-23 04:01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을지국무회의에 참석,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다. 이병주 기자
직무상 감찰내용 유출 혐의로 고발당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검찰 수사 개시가 임박한 상황에서 혼돈 양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청와대는 현 정부에서 신설된 특별감찰관의 감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특별감찰관은 청와대의 행태를 공개 비난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정치권, 경찰까지 장외에서 날선 말들을 쏟아내며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검찰 수사로도 사안이 정리되기 어려운 형국이다. 정치적 시비가 두려운 검찰은 수사 배당을 늦추고 형세를 살피는 눈치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국가 시스템에선 벌어질 수 없는 해괴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서로 다른 ‘국기 문란’

‘국기 문란’을 두고 청와대와 이 특별감찰관 의견은 첨예하게 갈린다. 청와대는 지난 19일 이 특별감찰관의 감찰내용 유출 의혹을 국기 문란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우 수석을 수사 의뢰한 이후 22일 첫 출근한 이 특별감찰관은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 발표에는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사실이라면’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가정을 전제로 한 말에 제가 가타부타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국기 문란 행위라는 청와대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되레 청와대가 국기 문란 주체라고 비난했다. 박근혜정부 초대 공직기강비서관이었던 그는 청와대가 국기 문란으로 규정했던 ‘정윤회 문건 유출’의 주동자로 몰린 바 있다. 조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 여론과 야당의 견제도 불가능한 ‘오직 나만이 길이고 진리다’ 식의 국정운영이야말로 국기 문란 아닌가 싶다”며 청와대를 겨냥했다.

민정수석과 특별감찰관이 현직 신분을 유지한 채 검찰 수사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감정 섞인 말이 오갔다. 이 특별감찰관은 사퇴 불가 뜻을 밝히며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정부의 방침 아닌가”라고 맞섰다. ‘확인된 의혹이 없다’며 우 수석을 엄호하는 청와대의 논리를 맞받아친 것이다.

“목을 비틀어놨는지” VS “다 제출”

우 수석 의혹과 관련한 경찰의 자료 제출을 놓고도 양측 말이 다르다. 언론에 공개된 전화 녹취록에 따르면 이 특별감찰관은 A신문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찰에 자료 좀 달라면 하늘 쳐다보고 딴소리 하고 그래.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놨는지 꼼짝도 못한다”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상원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특별감찰관의 발언에 대해 “언짢았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청장은 “(우 수석 아들 관련) 이 특별감찰관이 요구한 자료 61건 가운데 43건은 제출했고, 나머지 12건은 경찰에 없는 자료”며 “실제로 제출을 하지 않은 자료 4건은 신상에 대한 부분이라 제출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경찰 관계자들의 특별검찰관실 조사 거부 부분도 이 특별감찰관과 경찰 간 설명이 다르다. 이 특별감찰관은 “사람을 불러도 처음엔 다 나오겠다고 하다가 위에 보고하면 딱 연락이 끊겨”라고 말한다. 반면 이 청장은 “출석 요구자 6명 가운데 5명이 갔다”고 했다.

감찰 내용 유출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이다. 청와대는 “특별감찰관 본분을 저버린 중대한 위법행위이고 묵과할 수 없는 사항”이라며 강경하다. 하지만 조 의원은 “최근 10년간 피의사실 공표죄로 처벌받은 검사가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특별감찰관을 옹호했다.

‘공정수사’ 가능할까

검찰은 정치적 오해를 덜 받는 수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민감한 현안임을 의식해 이 특별감찰관이 수사의뢰를 한 지 나흘이 지나도록 사건 배당을 늦추고 있다. 그만큼 고민이 깊다는 의미다.

검찰 수사를 온전히 믿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비슷한 성격의 수사를 경험했던 조 의원은 ‘순진한 바람’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상 검찰 인사권을 쥐고 있는 우 수석에 대해 검찰이 공명정대한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감찰 내용을 유출한 배후가 조 의원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조 의원은 “(이 특별감찰관과) 대학 동기는 맞지만 검찰을 나오고 난 이후에는 잘 보지 못했다”며 “상상력이 과한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특별감찰관도 “최근 10년간 (조 의원과) 별 다른 교류가 없었고, 지난번에 법사위에서 봤다”고 배후설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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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용택 기자 nyt@kmib.co.kr, 사진=이병주·김지훈 기자,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