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가습기 살균제 피해 규명도 제대로 안됐는데… “화학제품 안전!” 홍보 판 깔아준 정부

입력 2016-08-23 04:39
관람객들이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6 생활화학 안전주간’ 행사의 환경부 정책홍보관을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홍석호 기자

네 살, 일곱 살 아이를 둔 김모(33)씨는 가습기 살균제 얘기가 나오자 둘째 딸의 손을 잡아 품으로 끌었다. “화학제품 불안이요? 엄마들은 말도 못하죠. 우리 아이들 더 어릴 때 가습기 살균제, 잠시 고민했어요. 다행히 쓰진 않았어요. 죽은 아이들도 많다던데….” 김씨는 가습기 살균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그렇다고 화학제품을 안 쓸 수도 없고, 무능한 정부나 안전하다 홍보하는 기업도 믿기 어려워 답답한 마음에 행사장을 찾았다고 했다.

환경부와 국민안전처는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생활화학기업들과 손잡고 ‘2016 생활화학 안전주간’ 행사를 열었다. 환경부는 개회사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5위 규모의 석유화학제품 생산국가다. 화학산업이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로 예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는 환경부 정책과 생활화학제품의 ‘홍보의 장’이었다. 주최 측은 내빈들이 버튼을 누르면 ‘화학안전’ ‘국민안전’이란 문구가 쓰인 손 모양의 풍선이 부풀어 올라 새끼손가락을 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행사장 입구에 위치한 환경부 홍보관에는 ‘꼼꼼한 화학안전 정책’이란 문구가 걸렸다. 환경부는 “생활화학제품 유해물질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다”며 관람객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한 반성이나 ‘피해자 눈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형광증백제 없는 안심표백제 ○○○○” 등 광고가 가득했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망한 사람은 정부 공식 통계로만 현재까지 113명이다. 3600여명에 달하는 ‘피해 의심자’는 정부의 피해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누가 어느 정도 잘못했는지 규명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다.

참가 업체들은 제품 설명에 한창이었다. LG생활건강은 자사의 친환경제품을 선전했다. LG생활건강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119 가습기세균제거제’란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현재 국회 청문회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워낙 오래전에 단종된 제품이어서 제품 정보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는 없다”며 “이번 행사는 환경부 요청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호서대 안전성평가센터도 부스를 마련했다. 이 대학의 유모(61) 교수는 옥시 측에 유리하게 실험 결과를 조작했다가 구속 기소됐다.

이번 행사는 정부 예산과 업체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예산이나 업체 후원금 규모는 정리해봐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어 “이 행사는 정부와 업체의 ‘홍보의 장’이 아니라 국민들 궁금증을 풀어주는 행사”라고 강조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장은 “아직 ‘화학안전’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 환경부가 피해자를 찾거나 진상을 규명하는 데 소홀하면서 업체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홍석호 이도경 기자 wi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