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기술 같지 않지만 ‘손 안의 컴퓨터’ 태블릿PC가 완벽히 호환하는 자동차는 전 세계에 아직 르노삼성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3(사진)뿐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전 세계 자동차 관련자들이 모여 혁신적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는데 지난해 거기서 QM3에 적용된 차량용 태블릿 T2C(Tablet to Car)가 굉장히 호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르노는 이 기술을 다른 차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태블릿PC와 자동차가 결합하면 운전자의 생활 패턴엔 어떤 변화가 생길까. QM3를 모는 가상의 직장인 현수씨를 보자. 현수씨가 30대 중반에 아직 미혼이면서 여자친구가 없다는 점을 먼저 일러둬야겠다.
차에 오르다
현수씨는 최근 QM3를 사고 난생 처음 ‘오너드라이버’가 됐다. 이 차는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T2C를 세계 최초로 적용한 차다. 나름 얼리어답터임을 자랑스러워하는 현수씨는 이 얘기를 듣고는 ‘오, 스마트한데?’ 하는 생각으로 QM3에 질렀다. 물론 그 점 때문에만 지갑을 열었다곤 할 수 없지만.
현수씨는 평일엔 보통 오전 7시 반쯤 집에서 나와 차에 오른다. 안전벨트를 맨 뒤 시동을 걸고서 몸을 흔드는 엔진 소리까지 듣고 나면 비로소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됐구나’ 싶다. 그렇게 각성된 현수씨는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들고 그날의 일정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실한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에 돌입한다. 이 태블릿에 현수씨의 삶이 있다. 오늘까지 끝내야 할 보고서, 자기가 사장인 줄 아는 거래처 ‘갑’들과의 미팅 ….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오늘 차장과 부장은 또 얼마나 종잡을 수 없는 히스테리를 부릴까. 그래도 저 ‘전쟁터’로 진군해야 한다. 서울 변두리인데도 비싼 자취방 월세와 만만찮은 소개팅·애프터 비용, 앞으로 한참을 갚아 나가야 하는 자동차 할부금을 벌기 위해서라도. 현수씨는 태블릿을 센터페시아(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앞부분)의 거치대에 꽂고 사무실로 출발한다.
‘전쟁터’ 가는 길
유령 같은 잡념을 떨쳐내는 데는 음악만한 게 없다. 현수씨는 태블릿으로 스트리밍(인터넷 실시간 재생) 음악 감상 서비스 ‘멜론’을 켠다. 일관된 음악적 취향 같은 건 없다. 걸그룹 노래를 듣다가 클래식으로 넘어가고, 힙합을 듣다가 올드팝으로 넘어간다. 인터넷에서 원하는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방식은 이런 사람에게 적격이다. 오늘은 지코와 열애 중이라는 설현이 떠올라 AOA의 ‘심쿵해’로 시작한다.
오늘따라 길이 막힌다. 이럴 땐 내비게이션 서비스 ‘T맵’이 있다. 이 내비게이션이 추천하는 우회로를 따라가면 도로에 버리는 시간과 기름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다. 언젠가부터 명절 귀경·귀성길이 그리 막히지 않게 됐는데 그게 T맵 덕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현수씨는 오전 8시 반 전에 회사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스마트(?)한 직장인
차 안에서만 써야 한다면 ‘태블릿’이라고 할 수 없다. 차량 거치대에서 다시 떼어 나온 태블릿은 동시 작업을 요구받은 회사원 현수씨에게 보조 컴퓨터가 된다. 사무실 데스크톱 컴퓨터로는 무거운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태블릿으로는 보고서 작성이나 인터넷 자료 검색을 한다. 태블릿은 무선 방식인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하면 컴퓨터 모니터처럼 쓸 수 있다.
오후에 업무 회의를 위해 거래처로 나선다. 이때도 태블릿은 필수다. 현수씨는 자신을 주목하는 거래처 직원들 앞에서 태블릿에 저장한 기획안을 설명한다. 계약을 따내려면 최대한 자신감 있고 노련하게 보여야 한다. 그러기에 태블릿은 유용한 도구다. 현수씨는 잠시 스스로 어딘지 ‘쿨’하다고 느낀다. 이 태블릿이 다른 태블릿과 달리 무려 자동차와 호환한다는 사실을 저 사람들은 알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자, 집으로
회의를 무사히 마치고 해가 뉘엿거리는 도로로 차를 몰고 나와 사무실로 향한다. 태블릿은 다시 센터페시아에 꽂혀 내비게이션과 음악 재생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긴장이 풀어진 마음을 일렉트로기타 연주가 두드러진 모던록으로 다독인다. 이대로 집에 가면 좋겠지만 보고서를 마무리해야 한다.
퇴근하면 대개 밤 9시가 조금 넘는다. 이 시간에 이미 먼저 와서 주차장을 가득 채운 차들을 볼 때마다 현수씨는 ‘무슨 일을 하면 저렇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낼 수 있는 걸까’ 궁금해 한다. 그러면서 태블릿에 띄운 자동차 후방 카메라 영상을 보며 깔끔하게 후면 주차를 해내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일찍 왔다고 반기는 사람도, 늦게 왔다고 뭐라는 사람도 없는 집은 ‘좋은 집’인가, ‘나쁜 집’인가. 현수씨는 황량한 기분이 들자 ‘고양이라도 한 마리 키울까’ 생각한다. 씻고 나니 10시. 침대에 누워 태블릿으로 영화를 본다. 쩝. 왜 하필 로맨틱 코미디를 골랐는지.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태블릿PC 호환 QM3, 태블릿이 내 차에 들어왔다… 후방 영상·내비·음악 “큐∼”
입력 2016-08-23 20:38 수정 2016-08-23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