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싸움? 사람 잡는 ‘데이트 폭력’

입력 2016-08-23 04:00
‘이별 통보’가 화근이었다. 정모(43·여)씨가 숨진 건 지난 3월 16일. 6개월간 만나온 남자친구 이모(46)씨에게 이별을 고한 날이었다. 정씨가 대전 중구 자신의 식당 안에서 헤어지자는 얘기를 꺼내자, 이씨는 그를 목 졸라 살해했다. 대전 중부경찰서는 CCTV 분석 등을 통해 이씨를 붙잡아 지난 3월 18일 구속했다.

김모(22·여)씨의 연애도 핏빛으로 끝났다. 3개월간 만나던 남자친구 이모(24)씨는 지난 6월 30일 김씨가 일하는 서울 강서구의 카페에 흉기를 들고 찾아와 김씨의 목 등을 30차례 찔렀다. 김씨가 카페에서 알게 된 다른 남자를 사귄다는 이유였다. 경찰에 붙잡힌 이씨는 지난달 1일 구속됐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씨는 지금까지 병원에 다니며 치료받고 있다. 경찰은 김씨와 가족에게 심리치료를 제공하고 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씨가 사회로 돌아오면 김씨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도 할 계획이다.

경찰청은 22일 데이트 폭력 대응강화 추진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월부터 지난달까지 데이트 폭력(연인 간 폭력)으로 살인을 저질렀거나 미수에 그친 31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중 28명은 구속됐다.

이 기간 전년 동기(4166명) 대비 24.1% 늘어난 총 5172명을 검거해 320명을 구속했다. 범죄 유형별로 폭행·상해를 저지르고 검거된 인원이 3789명으로 가장 많았다. 체포·감금·협박으로 699명, 스토킹 등의 경범죄를 포함한 기타 원인으로 491명, 성폭력으로는 162명이 붙잡혔다.

연령별로는 20, 30대(58.2%) 가해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 뒤를 40, 50대(34.3%), 10대(3.7%)가 뒤를 이었다. 가해자의 직업은 무직(29.4%)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 회사원(19.9%) 자영업(10.6%) 순으로 나타났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80%는 여성이었다. 폭행·상해를 당한 피해자가 67.2%로 가장 많았다. 스토킹 등 기타 피해를 입은 경우(14.8%), 체포·감금·협박(14.5%), 성폭력(2.9%), 살인(0.6%) 피해자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이 가정폭력과 일반 범죄 사이의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사랑싸움’이라는 인식 탓에 일반 폭력사건보다 데이트 폭력에 여전히 소극적으로 개입한다”며 “가정폭력에 준하는 별도의 처리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지원 체계도 미흡하다. 데이트 폭력은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가해자가 피해자 주변 정보를 훤히 꿰고 있어 보복성 추가범죄가 일어날 우려가 크다.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자 맞춤형 시설은 있어도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을 전담하는 곳은 없다. 여성가족부는 성폭력을 겪은 데이트 폭력 피해자에 한해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의료비 지원이나 법률구조 같은 실질적인 도움은 빠져 있다.

경찰은 현재 담당형사 핫라인 구축, 스마트워치 지급, 112신변보호대상자 등록, 주거지 순찰 등의 방식으로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 송 사무처장은 “접근금지 등 초기단계부터 적극적인 신변보호 조치를 확대하고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관련 부처와 함께 실효성 있는 데이트 폭력 예방책을 마련하고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법령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수민 윤성민 기자 suminism@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