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을지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 정권의 ‘심각한 균열, 체제동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실제 북한 내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근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귀순, 중국의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등에서 보듯 앞으로 체제 불안을 가속화하는 또 다른 대량 탈북 또는 소요사태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부터 북한 정권의 행동 변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부터 북한 정권을 겨냥한 박 대통령의 발언은 ‘체제 붕괴’까지 염두에 둔 강도 높은 표현이 많이 나왔다. 여기엔 북한 주민의 인권, 민생 대신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 등 무력도발 위협만 계속 고조시키는 북한 체제는 영속성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란 인식도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심각한 균열, 체제 동요’를 언급한 것은 북한의 이른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 가능성까지 상정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김정은 체제의 핵심 인물들을 개혁하고 변화시키는 ‘레짐 트랜스포메이션(regime transformation·체제 변환)’ 노력은 더 이상 무의미하고, 이제부턴 북한의 급변사태 등 극단적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언급은 내부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대남 도발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차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국정에 관한 연설을 통해 “북한 정권이 핵 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고,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할 것”이라고 했고, 3월 국무회의에서도 “북한이 변화하지 않으면 자멸하는 길을 걷는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가 지난해까지 ‘남북 신뢰 구축’ ‘평화통일 기반 마련’ 등 온건한 메시지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올해는 ‘자멸’ ‘체제 붕괴’ 등 갈수록 강해지는 추세다.
박 대통령의 이례적인 대북 발언이 안보 이슈를 부각시켜 국민 단합을 촉구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해석도 있다. 박 대통령은 을지국무회의에서 “위기상황을 앞에 두고 우리 내부의 분열과 반목이 지속되고, 위기 극복의 국민적 의지마저 약화된다면 지금까지의 위대한 역사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퇴보의 길로 접어들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드(THAAD) 배치에 대해서도 ‘북한의 적반하장식 왜곡’을 거론하면서 “우리가 여기에 휘말려 내부 갈등과 혼란을 가중시키면 바로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을지 NSC는 ‘지하벙커’로 불리는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상황실에서 열렸다. 박 대통령은 민방위 점퍼 차림으로 참석했다.
관심을 모았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이석수 특별감찰관 관련 언급은 없었다. 검찰 수사를 앞둔 만큼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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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北 심상찮다” 판단… 체제 붕괴까지 염두
입력 2016-08-23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