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이버전쟁이 시작됐다. 적국의 전산망을 해킹해 군사기밀을 수집하는 것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신(新)사이버전쟁은 정보를 훔쳐 전쟁에 대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해킹한 사실을 일부러 공개하고 빼낸 정보를 적국의 내부 갈등에 이용한다. 정치판을 흔들거나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해킹을 한다.
심지어 한 나라의 권력구도를 바꿔 놓는다. 미국 피델리스 사이버 보안업체 소장 저스틴 하비는 사이버 첩보활동이 “정보를 무기화해 국가를 교란하고 영향을 미치려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고 21일(현지시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전했다.
신사이버전쟁의 가장 큰 희생양이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일 수 있다. 클린턴은 지난달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이메일 해킹으로 곤욕을 치렀다. 위키리크스는 DNC 지도부 7명의 이메일 1만9252건을 공개했다. 이메일에는 경선 라이벌이던 버니 샌더스의 당선을 막으려는 지도부의 편파적인 모습이 담겼다. 결국 데비 와서먼 슐츠 DNC 의장이 사퇴했다. 샌더스 지지자는 강하게 반발했다. 클린턴을 대선 후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전당대회를 사흘 앞두고 터진 DNC 이메일 유출사건을 러시아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간접적으로 러시아를 지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호적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밀기 위해 사이버 공격을 가해 클린턴을 궁지에 몰았다는 의혹이 번졌다.
미국이 먼저 러시아를 상대로 ‘해킹 폭로전’을 벌였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4월 폭로된 비밀문서 ‘파나마 페이퍼스’가 바로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작품이라는 의혹이다. 파나마 페이퍼스에는 조세회피처에 재산을 숨긴 전 세계 거물급 인사가 포함됐다.
푸틴은 측근이 다수 등장하자 “미국 정보기관이 배후”라고 비판했다. 특히 미국이 러시아 대선을 2년 앞두고 자신을 흠집 내기 위해 파나마 소재 로펌인 모색 폰세카를 해킹했다고 반발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은 “러시아 내부를 혼란스럽게 하고 다루기 쉽게 만들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이런 형태의 사이버전쟁은 갈수록 확산될 전망이다. 종이 시대가 끝나고 대부분 데이터가 전산망에 저장되면서 정보를 빼내고 동시다발적으로 확산시키기도 쉬워졌다. 영국 BBC방송의 보안전문가 고든 코레라는 국민일보가 트위터로 보낸 관련 질문에 “무기화된 정보를 국가뿐 아니라 테러리스트까지 활용하면서 사이버전쟁은 더욱 확산될 것”이라며 “해킹한 정보를 폭로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새로운 전술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답했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기획] “정치 스캔들을 만들어내라” 美-러의 新사이버전쟁
입력 2016-08-2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