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서 9번째… ‘뒷걸음질’ 한국마라톤

입력 2016-08-22 18:59
한국 마라톤 대표팀 손명준(가운데 선수 왼쪽)과 심종섭(가운데 선수 오른쪽)이 21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출발점을 통과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마라톤에서 우승한 케냐의 엘루이드 킵초게(왼쪽)가 3위 갈렌 루프(미국)와 함께 시상식에서 메달을 깨무는 모습. AP뉴시스
1992년 8월 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 몬주익 언덕을 넘어 주경기장 트랙으로 가장 먼저 나타난 선수는 한국의 마라톤 영웅 황영조(46)였다. 황영조는 바르셀로나 도심의 42.195㎞ 구간을 2시간13분23초 만에 주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렇게 올림픽 남자 마라톤 시상식장에서 처음으로 애국가를 울렸다.

한국 마라톤은 손기정이 가슴의 일장기를 월계수로 가리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던 1936년 독일 베를린 대회까지 포함해 두 차례나 올림픽을 정복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금까지 손기정의 금메달을 일본 소유로 기록하고 있다.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민족적 수난을 겪지 않았으면 한국은 아시아 유일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보유국이 될 수 있었다.

한국은 이봉주(46)의 1996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로 마라톤 강국의 위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메달은 20년 넘게 맥이 끊겼고, 선수들의 기록은 하위권 수준으로 내려갔다. 한국 마라톤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추락을 다시 확인했다.

손명준(22)은 21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무에서 출발해 구하나바하 해변도로를 찍고 출발지로 돌아온 리우올림픽 남자 마라톤 42.195㎞ 구간을 2시간36분21초로 완주했다. 출전선수 155명 중 131위다. 중도 포기하고 기권한 15명을 제외하고 꼴찌에서 9번째다.

손명준과 동반 출전한 심종섭(25)은 2시간42분42초로 138위에 머물렀다. 심종섭 뒤에는 캄보디아로 국적을 바꿔 출전한 일본 코미디언 출신 다키자키 구니아키(39)가 있었다. 전문 마라토너가 아닌 다키자키의 완주 기록은 2시간45분44초. 심종섭은 그보다 고작 3분 빨랐을 뿐이었다.

두 선수 모두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 손명준은 서 있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심종섭은 경기를 앞두고 뒤꿈치에 통증을 느꼈다.

손명준은 “13㎞ 지점에서 오른쪽 햄스트링에 통증이 느껴졌다. 레이스 초반부터 꼬였다. 내 기록에 훨씬 못 미치는 기록이 나왔다. 20∼30㎞까지 잘 달렸으면 괜찮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모두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심종섭은 “열심히 훈련했지만 경기를 앞두고 뒤꿈치가 안 좋았다. 비까지 내려 몸이 무거웠다”며 “내 기록보다 크게 부진했다. 더 훈련하겠다”고 재기를 다짐했다. 심종섭의 개인 최고기록은 2시간13분28초다. 30분이나 늦은 심종섭의 기록이 아쉬운 이유다.

한국 마라톤은 2000년대 들어 급격한 하락세로 돌아섰다. 메달권 진입은커녕 중위권에서 하위권으로 성적이 급락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얇아진 선수층이다. 다른 종목보다 힘들지만 올림픽 때만 반짝 주목받는 마라톤의 특성은 후발주자를 발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는 축구 야구 등 프로 스포츠가 있는 다른 종목을 선택한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마라톤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김이용 강릉명륜고 육상부 코치는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 마라톤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자원 부족”이라며 “자녀에게 힘든 마라톤을 시키려는 부모는 많지 않다. 한국 마라톤의 영광을 재연하기 위해서는 유망주를 해외로 보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프리카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강세를 이어갔다.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는 2시간8분44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마라톤은 황영조가 금메달을 차지한 뒤부터 2004년 그리스 아테네 대회(이탈리아)를 제외하고 케냐 에티오피아 우간다 남아공 등 아프리카 선수들이 금메달을 독식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