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오롯이 ‘한 생명’을 위해… 그의 ‘仁術’은 계속된다

입력 2016-08-22 21:30
김인권 여수애양병원 명예원장이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회복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김 명예원장이 환자들의 수술 부위를 살피면서 따뜻한 덕담을 건네면 자신의 수술 집도의를 위해 흥겹게 노래까지 불러주는 환자들도 있다. 이곳에선 여느 병원 물리치료실과는 사뭇 다른 훈훈한 풍경이 펼쳐진다.
전국에서 모여든 환자들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여수애양병원은 진찰실 운영이 조금 특별하다. 환자가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료가 이루어진다.
여수애양병원 전경.
김인권 명예원장이 퇴행성관절염 환자의 인공관절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수술시간을 최소화하는 탁월한 수술 실력으로 정평이 난 그는 의료 로봇 등을 이용하지 않고 의사가 직접 수술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 절단 관절의 크기와 삽입 인공관절의 크기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김 명예원장의 집도에 그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의료진도 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인공관절 수술을 집도하는 정형외과 의사들이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의사들일 겁니다.”

여수애양병원 김인권(66) 명예원장이 수술을 마치고 나서며 밝은 얼굴로 이같이 말했다. 인공관절 수술 기구들이 목공 도구와 닮아 목수일을 했던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하다는 이야기였다. 수술대에서 고도로 숙련된 정형외과 의사의 모습이던 그의 말에 사뭇 엄숙하던 수술실 분위기가 이내 밝아졌다.

국내 인공관절 수술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김 명예원장은 남다르면서도 일관된 인술의 길을 펼쳐온 인의(仁醫)로 통한다. 1975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김 명예원장은 1980년 공중보건의로 국립소록도병원 근무를 자원했다. 부인과 생후 60일 된 딸을 데리고 소록도로 내려가 한센병 환자들을 보살폈던 그는 3년간의 공중보건의 근무를 마친 뒤 여수애양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부임했다. 한센인들이 처해 있던 참혹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한센병 치료 기관인 여수애양병원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는 “환자들의 겉모습이 아니라 아픔을 보게 됐다”면서 “한 명의 의사가 그렇게도 귀했던 현실 속에서 의사로서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센인 처우 개선과 소아마비 환자 수 감소에 따라 김 명예원장은 인술을 펼칠 새로운 방향을 열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아픔에 주목한 것. 그는 수술비 감당이 어려웠던 고령 환자들을 위해 불필요한 검사를 줄여 비용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그러자 병원 접수창구엔 문 열기 전부터 전국에서 모여든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김 명예원장이 한 해 집도하는 수술은 3000여건에 달한다. ‘오는 환자들은 무조건 받는다’는 원칙 아래 하루 전체 외래진료 환자가 300여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 그는 지난 3월 원장직을 그만뒀지만 환자들의 요청에 따라 여전히 수술실에서 메스를 들고, 병실을 회진하고 있다.

그가 펼쳐온 인술은 해외에서도 꾸준히 이어졌다. 1988년부터 정기적으로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해 온 그는 케냐 중국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등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한 나라들에서 인류애의 릴레이를 이어왔다. 저개발 국가 의사와 간호사를 대상으로 국내 초청 연수교육도 시행 중이다.

의사로서 보장된 안정적인 삶 대신 낮은 곳에서 헌신해 온 김 명예원장은 중외학술복지재단(이사장 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이 주관하는 성천상 제4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1980년대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던 청년 의사가 온몸으로 실천해 온 참 의료인의 표상은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고 선한 사랑의 힘을 더 큰 모습으로 더해가고 있다.

▨ 성천상은
JW그룹 창업자 생명존중 정신 기리려 제정


성천상은 JW그룹 창업자인 고 성천 이기석 사장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음지에서 헌신적인 의료봉사활동을 통해 의료복지 증진에 기여한 참 의료인을 발굴해 매년 시상한다. JW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 주관으로 지역별·대학별 대표성을 고려한 의료계 저명 인사들로 ‘성천상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올해 성천상위원회는 이성낙 가천대학교 명예총장이 위원장을 맡고, (이하 가나다 순) 김권배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원장, 방동식 가톨릭관동대학 국제성모병원 교수, 안덕선 고려대학교 교수, 유지홍 경희대학교 교수, 이순남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현철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조수철 국군수도병원 정신건강증진센터장 등이 함께 참여했다.

여수=사진·글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