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로 되살린 명화… 한금주 작가의 ‘한지 집합 그림展’

입력 2016-08-23 18:47
한금주 작가가 한지를 뜯어 붙이는 방법으로 재현한 ‘일월오봉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천경자의 ‘길례 언니’를 소재로 한 작품. 리서울갤러리 제공

다섯 개의 산봉우리 사이에 해와 달이 떠 있는 ‘일월오봉도’를 보자. 조선시대 궁궐 정전(正殿)의 어좌(御座) 뒤에 두었던 그림이다. 멀리서 보면 궁중회화를 재현한 것처럼 여길 수 있으나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한지를 뜯어 붙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한지 집합’이라는 타이틀로 10년째 한지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한금주(61) 작가의 작업이다.

건국대 미술교육학과를 나온 작가는 처음에는 사군자, 산수화, 정물화 등 전통 동양화를 그렸다. 추상화로 영역을 넓힌 그는 199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동양화 추상 부문에 입선하고 신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차지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붓질을 하면서도 가슴 속 뭔가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작업을 찾아 나섰다.

10년간 실험하고 연구한 끝에 창안한 게 ‘한지 집합’이다. 염료로 색깔을 입힌 한지를 한 조각 한 조각 뜯어 화면에 붙이는 작업을 했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명화를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이중섭의 ‘황소’, 천경자의 ‘미인도’ ‘길례 언니’, 박수근의 ‘아이 업은 소년’ ‘시장 사람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을 한지 작업으로 되살렸다.

한 작품에 보름 이상 한 달 가까이 걸리는 수고를 필요로 한다. 그렇게 작업한 작품을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리서울갤러리에서 ‘한지 집합 그림전’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인다. 붓으로 그려내는 게 아니라 한지 조각으로 새로운 회화 장르를 개척한 것이다. 한지 고유의 물성과 정서를 조형적으로 재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작가는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대로 세계적인 명화들을 옮긴 작품을 통해 한지의 예술성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도록에 글을 쓴 박상하 저술가는 “한 조각 비늘과도 같은 쌀알만한 한지의 편린들을 수없이 오리고 붙여나간 기나긴 인연이 이뤄낸 풍요로운 조형과 다채로운 색상의 향연”이라고 평했다(02-720-0319).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