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더위에 허덕이다 보니 불현듯 ‘추운’ 영화 생각이 났다. 배경이 겨울 혹은 추위인 영화를 보면서 더위를 식혀 보면 어떨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오마 샤리프와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비우(悲雨, 1968, 테렌스 영 감독)’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로 알려진 19세기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의 비련(悲戀) 실화를 영화화한 것. 국내 제목은 ‘비우’지만 실은 ‘비설(悲雪)’이라고 해야 옳다. 배경이 눈 덮인 겨울 산야였기 때문. 개봉 당시 이 영화의 신문광고에 실린 카피는 이랬다. ‘눈보라를 타고 바람이 전해준 꿈같은 사랑…’.
‘비우’의 연상 작용으로 역시 오마 샤리프가 주연한 ‘닥터 지바고(1965)’가 연이어 떠올랐다. 러시아 공산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한 데이비드 린 감독의 이 고전 명작은 올스타 캐스트가 출연한 다양한 인간군상과 격동기의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인간 드라마가 감동적이지만 그 외에도 얼어붙은 대설원 등 러시아 겨울 풍경이 압권이었다.
이 밖에도 추운 영화는 많다. 옛날 것으로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시대(1925)’. 알래스카의 골드러시를 배경으로 한 무성영화다. 비교적 요즘 것으로 소름이 오싹 끼치는 ‘샤이닝(1980,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있다. 겨울 동안 고립되는 산중의 외딴 호텔의 관리인 이 돼 가족과 함께 호텔에 왔다가 악령에 홀려 아내와 자식을 죽이려 광분하는 주연 잭 니컬슨의 광기 어린 연기는 콜로라도의 눈 쌓인 풍경과 어우러져 섬뜩했다. SF적인 추위를 다룬 ‘투모로우(2004, 롤런드 에머리히 감독)’도 있다. 기상이변으로 지구에 빙하기가 새롭게 도래한다는 재난영화다. 배우들보다 얼음과 추위가 실질적인 주연이고 스토리도 별 의미가 없다. 영화를 보면서 추위를 느끼면 그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위를 잊게 해주기에는 딱인 영화다.
더위가 가시려면 아직 많이 남은 이즈음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늦은 피서를 해보는 건 어떨지.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84> ‘추운’ 영화들
입력 2016-08-22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