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84> ‘추운’ 영화들

입력 2016-08-22 19:14
영화 ‘비우’ 포스터

올여름, 더위에 허덕이다 보니 불현듯 ‘추운’ 영화 생각이 났다. 배경이 겨울 혹은 추위인 영화를 보면서 더위를 식혀 보면 어떨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오마 샤리프와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비우(悲雨, 1968, 테렌스 영 감독)’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로 알려진 19세기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의 비련(悲戀) 실화를 영화화한 것. 국내 제목은 ‘비우’지만 실은 ‘비설(悲雪)’이라고 해야 옳다. 배경이 눈 덮인 겨울 산야였기 때문. 개봉 당시 이 영화의 신문광고에 실린 카피는 이랬다. ‘눈보라를 타고 바람이 전해준 꿈같은 사랑…’.

‘비우’의 연상 작용으로 역시 오마 샤리프가 주연한 ‘닥터 지바고(1965)’가 연이어 떠올랐다. 러시아 공산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한 데이비드 린 감독의 이 고전 명작은 올스타 캐스트가 출연한 다양한 인간군상과 격동기의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인간 드라마가 감동적이지만 그 외에도 얼어붙은 대설원 등 러시아 겨울 풍경이 압권이었다.

이 밖에도 추운 영화는 많다. 옛날 것으로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시대(1925)’. 알래스카의 골드러시를 배경으로 한 무성영화다. 비교적 요즘 것으로 소름이 오싹 끼치는 ‘샤이닝(1980,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있다. 겨울 동안 고립되는 산중의 외딴 호텔의 관리인 이 돼 가족과 함께 호텔에 왔다가 악령에 홀려 아내와 자식을 죽이려 광분하는 주연 잭 니컬슨의 광기 어린 연기는 콜로라도의 눈 쌓인 풍경과 어우러져 섬뜩했다. SF적인 추위를 다룬 ‘투모로우(2004, 롤런드 에머리히 감독)’도 있다. 기상이변으로 지구에 빙하기가 새롭게 도래한다는 재난영화다. 배우들보다 얼음과 추위가 실질적인 주연이고 스토리도 별 의미가 없다. 영화를 보면서 추위를 느끼면 그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위를 잊게 해주기에는 딱인 영화다.

더위가 가시려면 아직 많이 남은 이즈음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늦은 피서를 해보는 건 어떨지.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