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미청구 대금 12조 ‘부실 뇌관’

입력 2016-08-23 00:30

올해 상반기 국내 주요 건설사의 미청구공사액이 12조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유가로 공사비 삭감 논란이 거센 중동에 공사가 몰리면서 잠재적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건설사도 북미와 유럽 등 새로운 시장 개척에 앞다퉈 나서며 리스크 관리에 분주한 모양새다.

22일 각사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시공능력평가 기준 상위 10위 건설사의 미청구공사 금액은 총 12조4365억원을 기록했다. 액수로 따지면 현대건설이 2조4686억원으로 가장 높았다. 1분기(2조5047억원)보다 600억원 가까이 줄었지만 여전히 1위다. 대우건설이 1조9951억원으로 뒤를 이었고, GS건설과 삼성물산이 각각 1조8275억원, 1조4742억원을 기록했다.

미청구공사액은 이미 공사를 진행했지만 발주처에 대금을 청구하지 못한 미수채권을 말한다. 주로 발주처가 건설업체의 공정률이나 사업비용을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정해진 시점이 됐지만 공사가 늦어져 못 받은 금액과 아직 계약 시점이 되지 않아 청구가 이뤄지지 않은 금액 등이 모두 포함된다. 공정률에 따라 기성금을 수령하는 건설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발생하지만 협상에 실패하면 향후 손실로 반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저유가 탓에 건설 사업을 축소하거나 공사비를 삭감하고 있는 중동 지역에 공사가 몰려 있는 점이다. 회사별 지난해 매출액 5% 이상 규모 공사 기준으로 따졌을 때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GS건설 등 4개 건설사의 미청구공사액 중 중동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분기 74.9%에서 2분기 81.4%로 6.5% 포인트 늘었다. 특히 GS건설의 경우 전체 미청구공사액 가운데 97.2%의 금액이 중동에 집중돼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동 지역은 과거에도 미청구공사액이 그대로 잠재손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며 “저유가로 해외 수주가 침체기에 빠져 있는 지금 중동발 미청구공사액은 손실과 비슷한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설사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중동과 동남아 등 기존 건설 수출국에서 북미, 유럽, 호주 등 선진 건설 시장으로 주력시장을 바꿔 나가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10일 영국 MGT파워가 개발하고 맥쿼리와 덴마크 연기금 PKA가 공동투자한 바이오매스 열병합발전소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GS건설도 올 초 싱가포르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차량기지 프로젝트를 1조7000억원에 단독 수주했다. SK건설도 지난해 국내 건설사 최초로 미국 천연가스 액화플랜트 공사를 따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재정 악화로 갑자기 공사를 중단하는 등 시공사에 갑질을 하고 있는 중동 대신 신뢰와 안정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장을 찾는 노력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