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 통해 중남미 선교기지 꿈꾼다

입력 2016-08-22 21:51
지난 12일 페루 수도 리마의 요한장로교회에서 열린 가정교회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주님만이 우리의 열린 문’이라는 의미의 찬양 ‘Tu eres mi puerta’를 부르고 있다.
홍종애 선교사와 알프레도 목사가 지난 12일, 사역중인 페루 수도 리마의 요한장로교회에서 잠시 포즈를 취했다. 홍 선교사는 “사는 데 불편한 건 있지만 하나님이 불러주신 곳에 있을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중남미 선교는 한국교회에서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비해 관심을 못 받아왔다. 우선 지구 반대편이라는 물리적 거리감이 컸다. 여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등 서구 지배로 가톨릭 국가가 많고, 빈부격차는 심하되 절대빈곤국은 아니다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했다. 하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 사실상 중남미 선교의 실패를 시인했을 정도로 이곳은 영적으로 침체된 땅이다. 가톨릭이 국교이긴 하나 실질적 종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동네마다 십자가가 세워져 있지만 샤머니즘적인 면이 강할 뿐,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바로 이런 남미에서 사역을 하며 중남미 선교의 비전을 키워나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지난 12일 페루 수도 리마 남부의 미라플로레스 외곽 요한장로교회(Iglesia Presbiteriana San Juan)에서 만난 홍종애 선교사와 그의 남편 알프레도 비얄따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홍 선교사는 1980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세계복음화대성회에서 처음으로 라틴 아메리카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었다. 한국외대 서반어과에 재학중이던 그는 크리스천이었지만 교회를 떠나 방황하고 있었다. 별 기대 없이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께 왜 하필 이런 공부를 하게 하셨냐고 묻던 그는, 집회 마지막 날 라틴아메리카 선교를 위해 스페인어를 공부하게 하셨음을 깨닫고 회심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선교사가 되어 남미로 나오기까지는 24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는 “한국의 선교단체에서 7년간 일하면서 다른 이들을 선교사로 훈련시키고 경기도의 한 교회에서 한국에 온 페루인 등을 대상으로 외국인 사역을 하다 2004년에야 비로소 페루로 오게 됐다”고 했다. 사역 도중 만난 페루인 알프레도와 결혼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기나긴 준비의 시간을 거친 뒤 현지인 남편과 페루 선교지로 왔지만 막상 사역은 쉽지 않았다. 직전 목회자가 떠난 뒤 교인들 간에 갈등과 분열이 깊었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문제도 끊이질 않았다.

목회가 안정궤도에 오른 건 2007년 가정교회를 접목하면서다. 한국의 목장 또는 셀 모임 같은 개념으로, 무엇보다 목자들이 전적으로 가정교회 구성원을 섬기도록 했다. 매주 금요일에 모이는데 현재 12개 가정교회가 활동 중이다. 2009년 알프레도가 목사 안수를 받고 이 교회 담임으로 취임한 뒤 교회는 더 안정적인 국면에 들어섰다.

이날 저녁 8시, 교회 4층에서 택시 운전사인 후안 카를로스(39)와 로시 꼬스뜨란도(33) 부부가 목자로 섬기는 가정교회 모임이 열렸다. 직전 주일 예배의 설교를 목자가 요약 설명하고 난 뒤 저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나눴다.

지난달 세례를 받은 로사 이사벨(62·여)씨는 “마약중독자 아들이 집에 있는 걸 다 가져다 팔아서 힘들지만, 그래도 교회에 나온 뒤부터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며 “내가 변하니까 아들도 조금씩 달라지면서 마약을 끊으려 노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로사씨는 “요즘 매일 일어나면 아들이 약을 끊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좋겠다고 기도한다”며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다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가 좋다”고 말했다.

보르하 나라(63)씨는 당뇨병이 심했는데 교회에 나오면서 증세가 완화됐다. 그는 “며칠 전 병원에 갔을 때 기다리는 환자들이 너무 많아 다들 불평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말씀을 전하길래 나도 옆 사람을 붙잡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불만을 터뜨리며 기다리던 때와 달리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며 웃었다. 그는 기도제목을 묻자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말씀을 주변 사람들과 잘 나누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당장 오늘 끼니 걱정을 할 정도로 어려운 가계 상황부터 암으로 투병하던 친구를 떠나보낸 이야기 등 진솔하게 삶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임이지만 페루에서 이만큼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알프레도 목사는 “한국인들은 한 번 하겠다고 하면 해내는데 페루에선 약속을 잘 안 지키는 경우가 많다”며 “목자로 임명을 해도 어느 순간 도망 가버리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톨릭이 국교이지만 주일에 선거를 치르고 온갖 행사를 열 정도로 ‘주일 성수’나 ‘교회’에 대한 개념이 없어 애를 먹었다고 한다. 홍 선교사는 “처음에는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을 가르쳐 익숙해지게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면서 “1세대들이 조금씩 신앙의 뿌리를 내리면서 그들을 통해 복음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매주 출석교인 기준으로 장년은 90∼100명,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까지 합하면 250명이 교회를 찾는다. 지난해에는 교회 초기 멤버였던 청년 1명을 파나마에 선교사로 파송했다. 홍 선교사는 “이 교회를 공고히 세우고 일꾼들을 키워서 페루뿐 아니라 중남미 전체로 파송할 것”이라며 “이 교회가 중남미 선교의 기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리마(페루)=글·사진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