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양무진] 태영호 망명, 냉정하게 봐야

입력 2016-08-21 19:03

지난 17일 통일부는 대변인 긴급 브리핑을 통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부인·자녀와 함께 대한민국에 입국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BBC 방송이 보도한 이후 정부의 공식 반응이다. BBC는 태 공사의 아들이 7월 중순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태 공사가 7월 중순 국내에 입국했다면 그동안 아무런 발표를 하지 않은 통일부의 태도는 적절했다. 정치적 망명은 관련 국가와의 외교적 관계, 망명 당사자의 신변안전이 최우선이다.

정부는 태 공사의 망명 동기를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교육·장래 문제 등 3가지로 설명했다. 북한은 독재체제이고 대한민국 체제가 북한보다 우월하고 자녀들의 미래도 보장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7월 말 현재 국내에 들어온 전체 탈북자는 2만9600여명이다. 역대 정부가 설명하는 탈북자들의 탈북 동기는 똑같다.

전문가들의 면접조사에서 나타난 탈북자들의 탈북 동기는 생계형, 비리형, 연좌형, 가족형, 자녀형으로 나뉜다. 생계형은 주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탈북한 유형이다. 비리형은 관료들이 비리에 적발돼 탈북한 형태다. 연좌형은 본인보다 가족·친지들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는 것이 두려워 탈북한 사례다. 가족형은 먼저 탈북한 가족과 결합하기 위해 탈북한 유형이다. 자녀형은 북한 외교관들이 자녀들의 의사를 존중해 탈북하는 형태다. 태 공사는 영국에서 유학 중인 두 명의 아들과 함께 탈북한 점에서 자녀형으로 분류된다.

북한 외교관은 사상이 투철하고 충성심이 강한 엘리트들이다. 통상적으로 3년 정도 해외에서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내에서 3년 정도 사상교육을 받으면서 재충전한 후 다시 해외로 나간다. 90년대 경제난을 겪으면서 3년 원칙은 무너졌다. 외화벌이를 잘하는 일꾼들은 상납을 많이 함으로써 해외 근무가 연장됐다. 외교관의 자녀가 현지에서 대학까지 다니는 것은 흔치 않다. 태 공사의 큰아들은 아버지 근무지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태 공사에 대한 북한 국내의 막강한 후원자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태 공사의 부인 오혜선이 항일 빨치산 가문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태 공사는 둘째 아들의 대학 진학을 앞두고 본국 귀환 명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큰아들은 외교관이 되지 않는 한 군대에 가야 한다. 작은아들은 본국에서 진학해야 한다. 자녀들 의사 존중이 망명의 동기임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 당국은 태 공사의 망명에 대해 김정은 체제 약화를 예상한다. 90년대부터 수많은 북한 외교관들이 탈북했다. 97년에는 주체사상의 이론적 창시자인 황장엽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계승·발전된 선군사상이 지도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붕괴는커녕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은 더욱 공고화됐다.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연간 탈북자는 1400여명이다. 관리직·군인·외교관 출신은 연간 40여명으로 3%를 차지한다. 대북 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현 단계 탈북자는 김정은 시대의 평균치를 유지하고 있다.

태 공사의 망명 시점에 북한은 정상적인 외교활동을 펼쳤다. 이용호 외무상은 아시안지역안보포럼에 참석해 북·중 간 밀착 관계를 과시했다.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은 올림픽이 열리는 브라질 리우에서 스포츠 외교를 지휘했다. 이수용 노동당 부위원장은 아프리카에서 비동맹 협력 외교를 펼쳤다. 북한 정세는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전략은 주관적으로 세우는 것이 기본이다. 탈북자 수를 가지고 대북 제재의 성과 운운하거나 태 공사 같은 외교관의 망명을 김정은 체제 붕괴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잘못된 정세 분석의 모든 비용은 국민 부담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