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국정원 매수, 강제된 것”… 南비난 판박이 선전전

입력 2016-08-20 04:27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한국행이 한국 정보 당국의 뇌물과 강압에 의한 것이라는 북한 측 관계자의 첫 반응이 나왔다. 북한이 지난 4월 중국 소재 북한식당 종업원들의 집단탈북 때처럼 ‘남측의 모략과 납치’로 호도하는 대응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일본 조총련계 김명철 조미평화센터 소장은 18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남한 정보기관들의 전형적 작전이며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음모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태 공사의 망명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매수 또는 강제된 것”이라고 했다.

재일 군사평론가인 김 소장은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통했던 북한 소식통이다. 그는 “박근혜정부가 각국의 북한 외교관을 돈과 여자로 유혹하고 있다”며 “태 공사의 자녀를 납치해 인질로 붙잡아두고 태 공사가 한국행을 결정할 때까지 압박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와 정보 당국은 대응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자발적이라고 하면 자기 체제에 대한 비하, 패배감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남측에 의해 갔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본다”고 말했다. 한 정보 당국 관계자도 “주요 인사 탈북 때 마다 나오는 상투적 수사일 뿐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북한 주요 매체들이 태 공사의 한국 망명 사실이 공개된 지 사흘째인 19일까지 침묵으로 일관한 데 대해 정 대변인은 “북측도 내부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체제 핵심계층에 속하는 고위 외교관의 탈북이기에 북한도 대응책 마련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내부 사정에 정통한 김 소장이 “지난 4월 발생한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에 대한 납치와 유사하다”고 주장한 만큼 북한의 향후 대응은 ‘납치설’로 가닥을 잡아가는 분위기다.

북한식당 종업원들의 집단탈북이 공개됐을 당시에도 북한은 닷새 만에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첫 공식 반응을 내놓은 뒤 ‘전대미문의 납치 사건’이라며 대대적인 선전 공세에 착수했다. 탈북 종업원들의 가족과 동료 인터뷰 영상을 내보내 송환을 촉구하는가 하면 북한 적십자회를 통한 직접 대면을 위해 가족들을 서울로 보내겠다고까지 주장했다.

북한은 이번에도 ‘남측에 의한 납치’를 주장하고, 동시에 태 공사 등을 변절자로 매도하면서 남측과 내부 단속을 함께 겨냥한 선전전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태 공사가 직계가족 대부분을 데리고 입국했으나, 아직 제3국에 체류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태 공사 딸 등의 신병을 북한이 확보할 경우 이를 활용해 여론전에 나설 여지는 충분하다

북한 내부에서도 철저한 ‘단속’과 ‘처벌’이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은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태 공사 가족의 망명을 계기로 2009년 이후 시행돼온 ‘외교관 가족동반제도’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북한대사관이 최근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북한대사관이 이달 초 폐쇄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대북 제재 차원에서 자국 내 북한 공관의 철수를 요구했다는 관측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정건희 조성은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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