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스타-박주봉] 우리들의 배드민턴 영웅, 다시 세계를 제패

입력 2016-08-19 17:53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박주봉 감독(왼쪽)이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루 파빌리온4에서 열린 배드민턴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일본이 금메달을 획득하자 두 손을 들고 뛰어오르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태극마크를 달고 뛴 첫 경기가 ‘한·일 고교 교환경기’였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인 박주봉(52)은 전국 배드민턴 대회에서 2년 선배인 고교랭킹 1, 2위를 모두 꺾고 막 국가대표로 선발된 참이었다. 일본은 한국이 고교 신입생을 랭킹 1위로 앞세우자 ‘꼼수’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표정이 싹 바뀌었다. 박주봉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일본 고교챔피언을 세트 점수 2대 0으로 제압했다. 경기가 끝난 뒤 일본 배드민턴 관계자는 “박주봉이 있는 한 일본은 한국을 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국가대표 데뷔전에서 일본을 ‘초전박살’낸 박주봉이 일본에 역사상 첫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을 안겨줬다. 일본은 18일(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마쓰토모 미사키(24)·다카하시 아야카(26)가 덴마크를 세트 점수 2대 1로 꺾어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승리를 확정짓는 마지막 득점 순간 박주봉은 코트로 달려 나가 선수들을 껴안았다.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004년부터 12년간 헌신하며 일궈낸 결실이었다.

박주봉은 한국을 넘어선 세계 배드민턴의 영웅이다. 1996년 그가 받은 ‘하버트 스칠 상’은 1934년 국제배드민턴연맹(IBF)이 창설된 뒤 지금껏 단 17명에게만 수여된 배드민턴계의 노벨상이다. 2001년에는 배드민턴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현역 때 사용했던 라켓이 영구 전시됐다. 1990년대 배드민턴이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선 ‘주봉 버거’ ‘주봉 주스’가 불티나게 팔렸다.

박주봉은 고3때 1982 덴마크 오픈에 출전해 복식 우승을 차지한 뒤 1991년까지 세계대회에서 복식 50승을 기록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72회 우승한 그는 기네스북에 올랐다.

다음해 박주봉은 세계 배드민턴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배드민턴이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해 남자 복식에서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국가대표만 13년째였던 그는 은퇴를 선언했지만 대한배드민턴협회가 1995 애틀랜타올림픽을 앞두고 급히 현역 복귀를 요청해 또다시 현역으로 뛰었다.

은퇴 후에는 전 세계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1996년 영국은 1주일에 2차례 국가대표팀을 지도해주면 박사과정 학비와 생활비 등을 전액 지원하겠다며 박주봉을 스카우트했다. 이후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을 순회하며 각국 대표를 지도하던 그는 일본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금빛 도전을 이어갔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