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손문기] 항생제 내성균에 대한 반격

입력 2016-08-19 19:14

‘팔도에 열병과 마마로 죽은 백성을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는 정도였다.’ 조선왕조실록(현종 12년, 1671년)의 구절이다. 몇 백년 전만 해도 홍역이나 콜레라, 폐렴, 이질은 걸리기만 하면 죽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유럽에서도 14세기 발생한 흑사병으로 중세시대가 막을 내렸으며, 1차 세계대전 당시 발생한 스페인 독감으로 전 세계에서 1억명의 사망자를 냈다. 그러나 1928년 스코틀랜드 출신 알렉산더 플레밍의 항생제(페니실린) 발견으로 감염질환의 일방적 공격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페니실린은 2차 세계대전 부상으로 패혈증에 걸린 수많은 군인은 물론이고 급성폐렴이나 기관지염으로부터 무수한 환자들의 생명을 구했다. 이후 빠른 속도로 2세대, 3세대 항생제들이 개발되면서 인류의 건강과 수명은 획기적으로 연장되었다.

항생제 발견 100년을 지나면서 감염질환의 역습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항생제의 공격을 이길 수 있는 항생제 내성균이 출현한 것이다. 출현 속도가 새로운 항생제 개발보다 10배나 빠르다. 영국 정부의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70만명이 항생제 내성균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으며,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2050년에는 100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항생제 내성은 부적절한 항생제 처방뿐 아니라 가축 사육이나 어류 양식 시 사용한 항생제 오남용으로 생긴 내성균을 육류, 수산물을 통해 섭취하거나 환경으로부터 전달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람들에게 항생제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항생제 내성 관리는 어려우며, 식품과 축산물에서의 항생제 오남용 관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2008년부터 항생제 내성 안전관리 대책을 추진하여 WHO 기준인 일일사용량지수(DDD, Defined Daily Dose)를 도입, 항생제 사용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있게 했다. 또 항생제 사용 실태와 인지도 조사로 적정 사용에 대한 중요성을 제고시키고, 항생제 내성균 검사법을 표준화했다. 식품 및 축·수산에서 항생제 내성균 모니터링과 지속적 실태조사로 동물용 항생제 사용을 줄이도록 했다. 그 결과 축·수산에 사용하는 항생제 판매량은 2003년 1439t에서 2015년 910t으로 급감했으며, 유통 쇠고기에서 분리된 대장균의 테트라사이클린 내성률이 2003년 80%에서 2015년 30%로 감소했다.

항생제 내성 저감 노력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우리나라는 2007년 국제식품위원회(Codex Alimentarius Commission)내 항생제특별위원회 의장국으로 선출되어 ‘식품 기인 항생제 내성 위해평가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회원국들의 항생제 내성 위해 평가에 기여했다. 지난 6월 코덱스 총회에서 다시 의장국으로 선출된 우리나라는 회원국들과 함께 ‘항생제 내성 통합 감시를 위한 가이던스’를 2020년까지 개발하고, ‘항생제 저감화 및 방지를 위한 실행규범’을 개정할 계획이다. 항생제 내성 관리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도 모색할 것이다. 항생제 내성 문제는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다. 정부는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의장국으로서 리더십을 발휘, 항생제 내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감염질환의 역습에 대한 인류의 대반격은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손문기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