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인 박형규(사진) 원로목사가 18일 오후 5시30분 향년 94세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192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박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제66회 총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남북평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인권운동과 빈민선교, 한국교회와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기여해 왔다.
박 목사는 1950년 부산대 철학과를 중퇴한 뒤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59년 일본 도쿄신학대대학원을 졸업했다. 같은 해 4월 기장 서울노회 공덕교회 부목사로 부임하며 목회자의 길에 섰다. 1960년 4·19혁명은 박 목사의 삶에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당시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나서던 길에 총소리와 함께 피 흘리며 쓰러져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독재정권에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회고록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를 통해 “들것에 실린 피 흘리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피 흘리는 예수를 보았고 여러 날을 충격 속에서 살았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시작한 ‘길 위의 신앙’은 박 목사를 우리 사회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세웠다. 그와 동시에 군사 독재정권으로부터의 탄압도 이어졌다.
박 목사는 유신독재를 비판하는 ‘3·1 민주선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긴급조치, 집시법 위반 등 죄목으로 6차례 옥고를 치렀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기도 했던 그는 35년 만인 2014년 법원의 재심에 의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저서로는 ‘해방의 길목에서’ ‘파수꾼의 함성’ ‘행동하는 신학 실천하는 신앙인’ 등이 있으며 회고록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로 2010년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박 목사의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기장 총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기장 총회는 유족과 협의해 구체적인 장례 절차를 결정하기로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종렬·종관, 딸 순자·경란씨 등 2남2녀가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박형규 원로목사 소천
입력 2016-08-18 2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