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건 나왔다고 다른 부동산에 얘기하시면 안 돼요. 그만큼 좋은 집이에요.”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도보로 7분 거리에 위치한 한 원룸에 들어서자 노란 때가 끼어 있는 벽지와 바닥에 곰팡이가 핀 화장실이 눈에 보였다. 보잘것없어도 29㎡ 남짓한 이 원룸에 살려면 보증금 7000만원과 함께 매달 20만원을 내야 한다. 신촌 A부동산 관계자는 “전세는커녕 반전세도 없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나온 원룸은 이곳이 유일하다”며 “바로 계약하지 않으면 못 들어온다”고 했다.
이튿날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주변도 상황은 비슷했다. B부동산 관계자는 “보증금이 2000만원 이상인 전세방은 1년 내내 없다”며 “올해 전세 계약 자체를 해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앞에서 만난 대학생 나모(25)씨는 “신입생으로 처음 방을 구할 때보다 값싸고 좋은 집을 찾기 힘들다”며 “지방 출신인 게 서러울 따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2학기 개강을 앞두고 대학가에 또다시 방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복학생과 졸업생, 취업준비생에다 계약이 끝나 새로 집을 구하는 학생까지 몰려들고 있지만 전세 물량은 찾아보기 힘들다. 있어도 1억5000만∼2억원으로 비싸다. 월세방의 경우 보증금 1000만원에 매달 50만원이 기본이고 에어컨 등의 옵션이 붙으면 더 올라간다. 관리비와 중개료는 별도다.
실제로 대학 주변 집값은 점점 오르고 있다. 18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종로구 명륜동의 ㎡당 전셋값은 올 3분기 258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43만원)보다 15만원가량 올랐다. 연세대와 이화여대가 있는 서대문구 전셋값도 3분기 현재 263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만원 올랐다. 이밖에 관악구(서울대)는 238만원, 광진구(건국대)는 271만원으로 계속 오름세다.
전세가 사라지는 건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금리 탓이다. 목돈이 필요한 임대인(집주인)도 대출을 받고 월세 수익으로 이자를 갚아나가는 게 이득이다. 운이 좋아 전세에 머물던 학생들도 월세나 반전세를 요구하는 집주인 때문에 쫓기듯 밀려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같은 대학생 전세난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11년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을 내놓았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국토교통부는 대학생이 대학 소재지에서 저렴한 돈으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제도의 대상에 지난 4월 취업준비생도 포함시켰다. 대상자가 전세 매물을 구해 오면 LH가 계약 가능 여부 확인 후 집주인과 직접 계약을 맺어 대상자에게 재임대하는 식이다. LH 관계자는 “올해 8월까지 4477가구가 청년전세 임대계약을 완료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전세가 없는 대학 주변이 아닌 학교에서 떨어진 지역이 대부분이라 실효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집주인의 입장에서도 LH의 까다로운 조건에 맞추는 것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집에 여러 명이 방을 나눠 쓰는 ‘쉐어하우스(Share House)’도 차선책으로 인기지만 개인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꺼리는 학생이 많다. 여기에 건물주나 집주인이 임대수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불법 ‘방 쪼개기’를 시도하는 경우도 빈번해 안전사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정부 차원에서 전세뿐 아니라 월세 등에도 일정 기준을 세워 대학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르포] 단칸방이 억!… 대학가 ‘셋방 전쟁’
입력 2016-08-1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