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명문대 합격 아들 장래 걱정? 탈북자 공작 부담?

입력 2016-08-18 17:56 수정 2016-08-18 21:39
제3국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2013년 영국 혁명공산당의 한 모임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는 모습. 유튜브 캡처

주영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공사의 배경이 투철한 ‘빨치산 혈통’이라는 분석이 쏟아지면서 그의 한국행을 놓고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가족의 미래를 고려한 ‘이민형 탈북’이라는 관측, 북한 내부 친인척 문제로 인한 도피성 망명이라는 주장 등 복합적인 원인이 혈통 좋은 엘리트 외교관의 극적인 결심을 부추겼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소식통 등에 따르면 태 공사의 아버지는 전 인민군 대장 태병렬로 지목된다. 태병렬은 김일성 주석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항일 빨치산 1세대 출신이다. 김일성종합대 총장인 태형철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태 공사의 형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엇갈린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도 18일 “태 공사의 부인 오혜선씨가 김 주석의 동지인 항일혁명 투사 오백룡의 친척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전 호위총국장인 오백룡의 두 아들 오금철·오철산 형제도 각각 군부 요직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주석의 직계인 백두혈통과 김 주석 혁명동지의 후손인 빨치산 혈통이 북한 권력층의 ‘양대 축’임을 감안할 때 태 공사는 최고의 혈통을 지닌 ‘금수저’인 셈이다.

빨치산 혈통 부부가 탈북해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북한 외교관들의 통상 근무기간을 훌쩍 넘겨 10년이나 유럽에서 지냈을 만큼 검증된 혈통과 사상의 소유자인 태 공사가 탈북한 이면에 복잡한 사정이 혼재돼 있을 거라는 추정이 자연히 뒤따른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태 공사가 체제 선전에 앞장섰던 사람인 만큼 바깥세상에 노출돼 있다 보니 자연스레 남북한을 비교하고, 김정은 체제의 한계와 희망 없음을 느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날 공개된 것 이외에 태 공사가 추가로 밝힌 발언은 없었다면서도 “최근 탈북 동기에 대한 추이가 다양화되고 있다. 예전엔 정치적 이유나 개인의 신상 문제가 주였다면 최근에는 삶의 질이나 미래 등 정치·경제적 요인이 복잡하게 겹친 ‘이민형 탈북’ 등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부연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볼 때 태 공사의 가장 큰 귀순 동기는 영국 명문대 진학을 앞둔 작은 아들 등 자녀들의 장래 문제를 고려한 ‘가장으로서의 중대 결정’이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올여름 임기를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던 태 공사에게 서구권에서 성장기를 보낸 20대 장남과 10대 차남, 딸 등 2남 1녀의 향후 학업과 미래는 큰 고민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태 공사의 19세 차남 ‘금(Kum)’이 레벨A(영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나오면 현지 명문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차남이 북한대사관 인근 고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재학하면서 소셜미디어를 즐기고 농구를 좋아하던 평범한 10대였다고 전했다.

영국 소재 ‘국제 탈북민 연대’ 관계자는 RFA에 “태 공사는 대사관 내 당 조직 책임자로서 현지 탈북자들의 동태와 관련기사, 주요 인물들을 감시하여 본국에 보고서를 작성·전송하던 주요 인물”이라고 전했다. 대사관에서 탈북자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태 공사가 탈북자 포섭과 공작에 대한 과도한 지시에 심경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이밖에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모종의 문제가 있어 본국으로 귀환할 경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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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