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괜찮니?”라고 물어봐주세요… ‘자살 예방’ 첫걸음은 주변의 관심 표현

입력 2016-08-18 18:40 수정 2016-08-18 21:20
평소 쑥스러워 말을 건네지 못했던 주변인들에게 손글씨로 마음을 전하는 ‘우체통 캠페인’용 엽서. 보건복지부 제공
출근하는 중년 남성에게 교복 입은 딸이 “아빠, 잘 주무셨어요?”라고 묻는다. 가방을 든 아버지는 멈칫하며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이어 ‘2주 이상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거나 식욕이 없고 체중이 준다면 혹시 우울증일지도… 의사와 상담하세요’라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일본이 2010년부터 진행한 전 국민 대상 자살예방 애니메이션과 포스터의 한 부분이다. ‘자살’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지 않고 자살 징후인 수면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 등이 적극적인 ‘게이트키퍼’ 역할을 함으로써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메시지 전달’ 효과가 컸다. 일본 내각사무처와 수면학회 등이 함께 TV와 웹사이트 등을 통해 캠페인을 전개했다.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 신은정 부센터장은 18일 “일본은 오랜 경제 불황으로 50대 중년 남성, 가장의 자살이 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며 “불면, 우울증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자살의 중요한 ‘사전 신호’라는 점을 결부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전 국민 사회운동을 통해 2003년 인구 10만명당 23.3명의 자살률을 2013년 18.7명으로 20% 줄였다. 2009년 호주의 ‘너 괜찮니(RUOK)?’, 1997년 뉴질랜드의 ‘내 마음이 네 마음(Like Minds, Like Mine)’ 캠페인 등도 비슷한 취지에서 시작했다.

복지부는 세계 10여개국 정부와 민간 자살예방 캠페인을 참고해 우리 실정에 맞게 벤치마킹한 ‘괜찮니?’ 캠페인을 본격 추진키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2015년 자살 심리부검 결과 자살 사망자의 93.4%가 신변정리 같은 자살 전 경고신호를 보냈으나 유가족의 81.0%는 미리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괜찮니 캠페인은 주변인에게 관심을 표현함으로써 서로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글씨 엽서를 통해 친구나 동료, 가족 등에게 마음을 전하는 ‘우체통 캠페인’과 영상으로 안부 인사를 전하고 애정을 표현하는 액션 릴레이 ‘에어키스(AirKiss)’, 전국 각지에서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노래와 춤 등 집단행동으로 보여주는 ‘괜찮니? 플래시몹’ 등을 진행한다. 복지부는 엽서쓰기에 참여하거나 에어키스 동영상 등을 올릴 수 있는 웹사이트 ‘괜찮니.com’을 오픈했다.

우체통 캠페인은 지난 5월 말 연세대에서 시범시행한 결과 학생, 교수 등 700여명이 평소 쑥스러워 말을 건네기 어려웠던 주변인에게 손글씨 엽서를 통해 관심을 표명했다. 이 대학 사회복지대학원생인 전소담(28)씨는 “진로·취업 등으로 힘들어하는 후배에게 엽서를 써서 보냈다. 혼자 감내하는 스타일인 후배가 엽서를 받아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다”고 말했다.

신 부센터장은 “2014년 통계에서 다른 연령대는 모두 자살률이 줄었는데 20, 30대 남성 자살률은 전년에 비해 각각 4.2%(인구 10만명당 20.9명→21.8명), 0.5%(36.4→36.6명) 증가했다”면서 “우체통 캠페인이 젊은층 자살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