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식(24·미래에셋대우) 주세혁(36) 이상수(26·이상 삼성생명)로 이뤄진 한국 남자탁구대표팀이 강호 독일과의 3시간 46분간의 혈투 끝에 눈앞의 동메달을 놓쳤다. 탁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88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은 28년 만에 처음으로 ‘노메달’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그래도 괜찮다.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정영식이 세계 최강 중국의 유일한 대항마이자 차세대 에이스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17일(이하 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루 파빌리온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게임스코어 1대 3으로 패했다. 1단식에서 정영식의 승리로 메달 가능성을 봤다. 하지만 2단식-3복식-4단식을 연달아 져 독일에 무릎을 꿇었다.
정영식은 대표팀 첫 번째 주자로 나서 바스티안 스테거(독일)와 풀세트 대접전을 펼쳤다. 1세트는 듀스 상황 끝에 12-10으로 잡아냈다. 마지막 5세트에서 정영식은 드라마 같은 역전극을 만들었다. 9-10 패배 위기에서도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고, 결국 듀스 끝에 13-11로 1단식을 이겼다. 정영식은 이상수와 함께 3복식에 나섰다. 또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세트 스코어 2-3으로 고배를 마셨다. 맏형 주세혁이 4단식에서 져 한국은 4위로 대회를 마쳤다.
정영식은 한국 탁구가 만리장성을 넘어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줬다. 지난 15일 열린 단체전 준결승에서는 첫 번째 주자로 나서 장지커(중국)와 풀세트 접전까지 가는 투혼을 보였다. 지난 8일에는 남자 단식에서 세계랭킹 1위의 ‘탁구 황제’ 마룽(중국)과 맞붙어 1, 2세트를 내리 따내기도 했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중국을 상대로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중국은 어떤 팀인가. 올림픽 역대 탁구 금메달 32개 중 28개를 가져간 나라다. 이번 올림픽에서 남녀 전 종목을 석권했다. 정영식과 단식에서 맞붙은 마룽은 남자 2관왕에 오른 최강자다.
정영식은 생애 첫 번째 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모두 출전해 인상적인 활약상을 남겼다. 덕분에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16년 만에 은퇴하는 주세혁의 후계자로 지목됐다. 남자 탁구는 정영식의 가세로 큰 공백 없이 세대교체를 단행할 수 있게 됐다.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주세혁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뒤 “후배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용기가 많이 생겼다. 한국 탁구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2년, 4년 뒤 후배들이 제 몫을 해줄 것”이라고 남자 탁구의 긍정적인 미래를 예상했다.
정영식은 “펜싱 금메달 박상영이 ‘할 수 있다’고 되뇌는 동영상을 수차례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며 메달 획득 실패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죄송하다”면서도 “이번 대회에서 (주)세혁이 형에게 마지막까지 의지를 많이 했는데 도쿄(올림픽)에서는 내가 에이스로 나가 다른 두 선수가 나를 의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국 탁구는 4년 후 도쿄에서 다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그때는 정영식이 포부대로 대표팀을 이끄는 정신적 지주로 성장해 국민들에게 금메달을 선물할지 모르는 일이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한국탁구, 만리장성 넘을 ‘정영식’을 얻었다
입력 2016-08-18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