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 가족의 한국 망명은 북한 지도부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직위와 출신 성분, 태 공사가 맡아온 업무까지 기존의 탈북자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태 공사는 국내로 귀순한 북 외교관 중 가장 고위급 인사다. 여기에 부인 오혜선씨는 항일 빨치산 가문 출신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 빨치산 가문은 김일성 일가의 백두혈통에 이어 진골로 분류된다. 오씨는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 일가라고 한다. 태 공사 아버지 역시 빨치산 1세대로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복무한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라는 말도 있다. 사실일 경우 빨치산 가문 출신 첫 귀순 기록이 된다. 한마디로 태 공사 부부는 북한판 금수저로 1%에 속하는 최고 특권층인 것이다.
특히 태 공사는 북한의 유럽 거점 공관인 주영 대사관에서 김정은 정권을 대변하는 ‘선전맨’으로 활약해 왔다. 이런 그들이 조국을 버리고 한국으로 망명한 만큼 북한 상층부에 미치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다수의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의 본격적인 균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도부에 심리적 내상(內傷)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밝힌 태 공사의 망명 동기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과 대한민국을 향한 동경, 자녀 장래 문제 등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와 미국의 인권개선 압박도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을 옹호해야 하는 태 공사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갈수록 좁아진 셈이다.
따라서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북한 엘리트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는 이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태 공사 가족의 망명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부적절한 처신이다. 외신에 관련 내용이 보도됐더라도 통일부가 나서서 확인해 줄 일은 아니었다. 북한 내 가족과 친인척들이 가혹한 숙청을 당한다면 오히려 엘리트층의 도미노 망명을 막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아울러 북한이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해 대남 도발을 감행하는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서 플루토늄을 새로 생산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5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사설] 태영호 망명, 엘리트층 도미노 탈북으로 이어지나
입력 2016-08-18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