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숨이 턱턱 막혔다. 지난 12일 오후 3시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한 가족추모공원. 중년의 부부가 그 더위 속에서 속울음하고 있었다. 부부 모두 눈물이 두두둑 흘렀다. 소리 내어 울진 않았다. 두두둑 눈물만 흘렸다.
지난달 17일 온 국민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줬던 ‘영동고속도로 5중 추돌사고’ 참사로 희생된 이수진(21)씨의 부모였다. 수진이는 사고 당시 함께 하늘나라로 간 동갑내기 친구 셋과 유골이 되어 같이 있었다. 스물하나 꽃다운 나이의 네 친구는 멀리 광림수도원이 보이는 추모공원 산언덕에서 그렇게 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수진이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며 천국을 소망하는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 부부는 지금 이렇게 서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수진이의 아버지(51·회사원)가 산 아래를 바라보며 무겁게 말을 꺼냈다. “그가 모태를 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전 6:15)간 것이 분명하나 육신의 정이 깊은 이 땅의 아비는 딸과 딸의 친구들의 주검을 오래 보지 못했다. 눈물을 감춰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아버지는 “주머니 속에 넣고 키운 딸”이라고 했다. 소녀가 되기 전까지 아빠가 소파라도 되는 양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수진이는 어려서 제 오빠(23)와 손잡고 주일학교를 다녔다. 그런 자식을 둔 엄마의 기도는 깊어졌다. 아빠는 열심히 일했다. 몇 차례 이사를 하며 살림을 불려 나간 건실한 부부였다. 넉넉하진 않으나 예수 안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던 가정이었다.
수진이는 용인시 죽전동에 살면서 분당우리교회(담임목사 이찬수)에 출석했다. 수진이는 쾌활했다. 그러면서도 상심한 친구들의 얘기에 함께 아파하며 들어주는 여린 감성을 지녔다.
청춘, “으샤으샤 힘내자” 떠난 여행
“얘들아 덥지. 미안해 애들아. 정말 미안해…. 하나님이 착한 너희들을 너무 사랑하셨나봐….”
그 바람 한 점 없는 8월의 혹서에 수진 엄마(49)는 손선풍기를 들고 딸과 그 세 친구 유골함에 바람을 날렸다. 밝고 경쾌한 20대 도시 숙녀들의 트렌드성 소지품인 손선풍기가 그렇게 슬픈 사물이 될 줄은 몰랐다. 통곡 없는 엄마의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부부는 딸들의 죽음을 통해 천국의 소망을 확신했다. 그래서 유골함 앞에서도 통곡하지 않았다.
“수진이는 고등학교 때 분당우리교회에 출석하는 과외 선생님을 통해 신앙이 깊어졌어요. 중국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고 중국어 공부에 정말 열심이었습니다. ‘중국어만큼은 최고가 될거야’ 하면서 서울 학원을 새벽같이 나가곤 했어요.”
2년 전 수진이는 중국 상하이로 유학을 떠났다. 상하이 한인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열심히 했다. 그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소식을 들은 상하이 한인교회 교인과 그곳 학우 50여명이 들어와 조문했을 정도다. 오는 9월 2학년 진학을 앞둔 수진이었고, ‘고래 잡을’ 열정으로 동해 푸른 바다로 떠난 20대 초반 청춘들이었다.
“중학 동창이었던 한 친구가 슬럼프에 빠져 있자 세 친구가 ‘으샤으샤 힘내자’ 하며 격려여행을 떠났던 거죠.”
‘사고의 재구성’은 무의미하다. 다만 수진이의 주검을 확인한 건 사고 4시간이 지난 밤 10시쯤이었다. 소지품이 발견되지 않아 통보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 4시간, 부부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기도 했다. 수진이 아버지는 영안실에 안치된 딸의 얼굴을 아내가 보지 못하도록 했다. 해맑은 수진이 얼굴을 기억하게 하고 싶어서였다.
수진이와 그 친구들을 위해 분당우리교회가 교회장으로 이끌었다. 2만여명의 교인들이 내내 중보기도를 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계 21:4)는 말씀을 붙잡은 이들이었다. 또 수진이 교회 친구 등 지인 500여명이 빈소를 찾아 네 친구의 천국행을 간구했다.
“수진이는 여러 사람 꿈에 나타나 천국으로 인도되었어요. 대구 수진이 할아버지가 하늘 문을 통해 보신 것, 미국에 있는 친구의 꿈 등 믿기지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천국소망이었죠. 7∼8명이 차분히 수진이 만난 얘기를 전해주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사고 이튿날 새벽 5시30분쯤 창밖 하늘을 보다가 수진이가 날갯짓하며 올라가는 걸 보았다. 놀라 할머니를 깨웠다고 한다. 미국 가 있던 친구는 핑크색을 좋아하던 수진이를 꿈에서 보았다. 군대 가 있던 동창도 꿈속에 나타난 수진이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친구나 지인 등에게 사고 전 꿈을 통한 인사였다.
분노, “딸은 ‘아빠 참아’ 이러겠죠”
“신앙생활과 전도에 열심이었던 딸의 진면목을 뒤늦게 알았어요. 부모로서 부끄러웠습니다. 딸 친구 하나는 주일 전날이면 수진이 방에서 자고, 우리 부부와 같이 교회에 갑니다. 친구 부모 위로한다고 그러는 거죠. 친구들끼리 공유한 앨범을 통해 내 딸 아이의 또 다른 밝은 모습을 봅니다. 지금도 ‘아빠 뭐해’ 하며 나타날 것 같아요.”
딸들이 떠난 지 한 달여. 남은 가족들은 이 추모공원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만난다. 올 때마다 딸 친구의 가족이 먼저 와 있기 때문이다. 이 여름, ‘생 1995∼졸 2016’ 음각으로 남은 아이들 이름 앞에 추억을 기리는 사진과 조화가 놓여 있다.
“가해자는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었어요. 분노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하나님 마음으로 보면 ‘용서해라’ 하는데… 수진이는 뭐라 할까요. ‘아빠 참아’ 그러겠죠.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이 아이들이 가르쳐 주네요. 천국을 소망하고 전부 내려놓으라고 이 딸들이 가르쳐주네요.”
광주(廣州)=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後記수진이 부모는 인터넷에 유포된 사고 동영상 충격과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로 지쳐 있었다. 언론을 피했다. 그렇지만 한 크리스천 청년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남기고 싶다는 설득에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딸 친구 하나가 ‘집안 생계를 책임졌다’는 보도는 잘못된 거예요. 그냥 그 나이 때 하는 아르바이트했을 뿐이었어요. 다만 우리 시대에 착한 아이들이 이처럼 어이없이 죽는 건 어른들의 책임이 분명해요.”
[전정희 기자의 샬롬] 영동고속도로 5중 추돌 참사 故 이수진 부모 "중보기도가 내딸 천국 인도"
입력 2016-08-19 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