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오의 팔복수훈] 광복절과 애통

입력 2016-08-19 19:34

2016년 8월 15일은 71번째 맞는 광복절이었다. 우리 민족이 35년간 일제의 압제로부터 풀려난 참으로 기쁘고 즐겁고 복된 날이다. 광복절을 맞는 올해, 여러 형태로 국가적 기념행사가 성대히 열렸다. 8·15 광복은 온 국민이 함께 누려야 할 축제와 환희의 한마당이다. 집집마다 길거리마다 태극기가 나부끼고, 여기저기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과연 광복절이 기쁨과 감사의 날이기만 할까? 71년 전 광복은 기쁨의 날이기도 하지만, 애통의 날이기도 했다. 8·15 광복은 온전한 해방의 날이 아니라 불완전한 해방의 날이기 때문이다.

8·15 광복은 반쪽짜리 해방을 우리 민족에게 안겨주었다.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닌 외세에 힘입어 얼떨결에 받아 든 해방의 선물인 것이다. 물론 항일 독립투사들과 국민들의 치열한 저항과 독립 열망이 끊이지 않았지만, 역사적인 측면에서 고찰해 볼 때 세계열강이 세계대전을 종식하면서 어부지리로 얻은 것이 우리의 광복이다. 이러한 역학관계에 눌려 우리나라는 해방과 동시에 분단체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분단체제 하의 한반도는 한민족이면서도 남북 간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했다. 북핵문제의 핵심은 통일되지 못한 분단의 아픔에서 비롯되었다. 분단이 아닌 통일 한국이 되었다면, 더 이상의 남북 갈등 혹은 남남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거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반성할 기미조차 없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고,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오늘의 우리 외교현실에서 8·15 광복절은 여전히 미완의 해방일로 남아 있는 것이다.

8·15 광복절엔 마땅히 환희와 감격의 마음을 품어야겠지만, 온전한 해방을 이루지 못하므로 갖는 애통의 마음도 함께 지녀야 한다. 온전한 해방은 한반도가 하나 되는 바로 그날이다. 남과 북이 하나 되어 한 민족, 한 나라가 될 때이다. 한반도가 통일될 때, 비로소 온 겨레는 진정한 의미의 기쁨과 환희를 누리게 될 것이다. 통일되기 전까지 우리는 감사의 노래도 불러야 하겠지만, 애통하는 노래 또한 불러야 한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마 5:4).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애통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 문제로 인해 슬퍼하고 고통 하는 심리적 행위이다. 그렇지만 애통은 단지 눈물을 흘리고 마냥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파하는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온전한 해방, 즉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고 애쓰는 보다 적극적인 행위를 말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시 126:5).

우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시대적 애통은 다름 아닌 남북분단 체제로부터 오는 것이다. 미완의 광복으로 인해 밀려온 애통이다. 분단이란 고통의 고리를 끊고자 통일의 씨를 눈물로 뿌리는 애통은 변하여 하늘의 위로가 될 것이다.

시 ‘별 헤는 밤’의 윤동주는 조국을 잃은 아픔과 항일을 노래한 민족 시인이다. 일제 식민지의 차갑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을 소망하며 눈물의 시를 통해 절절히 애통했다. 전선에 직접 선 독립투사는 아니지만, 그가 노래한 저항 시는 강렬하고 절박한 조국애를 담고 있다. 그의 시 가운데 ‘팔복’은 마태복음 5장 3∼12절을 모티프로 해서 조국 독립을 희구한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 시대에 가장 큰 복은 독립을 위해 애통하는 것이었다. 우리 시대에 당면한 복 역시 제2의 해방을 위해 애통하는 것이다.

강병오 <서울신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