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태의 마스크가 지금과 달랐다면 그는 좋은 배우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달리 큰 키에 미끈한 몸매만으로도 모델형인데 얼굴까지 서구적이면 배우가 아닌 모델로 남았을 것 같다.
오히려 한국인 특유의 밋밋한 얼굴 덕분에 배우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적 감성을 담기에 좋은 백자같은 담백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의 잔잔한 눈빛과 부드러운 미소는 착한 얼굴일 때는 한없이 유순해보이지만 악한 인물일 때는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를 보는 것 같이 차가운 전율을 느끼게 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순수청년을 연기할 때는 허무하다 할 만큼 맑은 모습을 보였지만 복수의 화신으로 나왔던 영화 ‘올드보이’에서는 치밀하고 잔인한 복수의 정점의 연기로 악마적 인물을 보여주었다.
요즘 드라마 ‘굿 와이프’에서도 그는 온순하고 따뜻한 얼굴 뒤에 권력의 욕망을 숨긴 권모술수에 능한 이중적 인물로 나온다. 나이 들어가는 유지태에게는 오히려 이런 가면을 쓴 악역이 더 매력적이다. 단순한 캐릭터는 연기자로 성숙해가는 걸 방해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올드보이’ 속 유지태처럼 도와주는 척 하면서 악을 저지르게 조종하는 인물이 성경에도 있다. 바로 요나답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다윗의 형인 시므이의 아들로 아버지가 아닌 삼촌인 다윗이 왕이 된 것을 시기해서 늘 다윗가문에 해를 끼치는 흉계를 꾸민 사람이다. 그는 사촌인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에게 연정을 품은 사실을 눈치 채고 음모를 꾸며 암논이 이복누이를 겁탈하게 만들었다.
그 일로 암논은 이복형제인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하고 누이의 인생도 겁탈과 실연으로 망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의 숨은 악인은 요나답인데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파괴하고도 태연히 악한 인생을 계속 살았다.
자칫 순하고 귀티 나는 얼굴 때문에 임팩트가 부족한 배우로 끝날 수도 있었던 유지태가 요나답같은 이중적 인물을 연기할 때 그 얼굴 뒤에 어둡고 잔인한 욕망을 숨기고 사는 인간의 원죄를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남궁설민 <의사·Back10 치유센터 대표원장>
[남궁설민의 스타미션] 배우 유지태, 선악이 공존하는 백자 같은 얼굴
입력 2016-08-19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