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無主空山·주인 없는 산)인 건 맞는데, 산이 높아 오르기 쉽지 않다.”
제약업계에 오래 몸담은 관계자가 표현한 바이오시밀러 시장이다. 2010년 들어 대형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의 특허 만료 기한이 다가오면서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제약업계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했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로 바이오의약품 소비가 늘고, 각국이 바이오시밀러 사용을 장려하면서 많은 제약업체들이 사업성을 타진하고 나섰다.
국내에서는 셀트리온과 삼성 계열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등이 적극 공략에 나서면서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가시적 성과를 내는 업체는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개발 과정부터 임상과 판매 승인까지 드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은 업체들에 쉽게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오리지널 약품 특허 풀리며 바이오시밀러 부상
국내 기업들 중 가장 먼저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진출한 기업은 LG다. 독립법인 출범 이전인 1981년 럭키(현 LG화학)에서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유전공학연구소를 설립했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B형 간염백신인 ‘유박스B’, 성장호르몬 ‘유트로핀’, 빈혈치료제 ‘에스포젠’ 등 다수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해 상업화에 성공했다. 주로 단백질 의약품 복제약으로 ‘1세대 바이오시밀러’로 불린다.
2010년부터는 항체 의약품 복제약인 ‘2세대 바이오시밀러’가 주목을 받았다. 레미케이드(Remicade) 엔브렐(Enbrel) 등 적게는 수조원에서 많게는 수십조원에 이르는 시장규모를 가진 대형 오리지널 의약품들이 2015년을 전후로 특허가 만료된 데 따른 것이다. 미국 존슨앤드존슨이 개발한 레미케이드의 경우 2014년을 기준으로 92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가격경쟁력에서 앞서는 바이오시밀러로 오리지널 의약품 시장의 일부만 파고들어도 ‘잭팟’을 기대할 수 있는 규모다.
여기에 바이오의약품의 가격을 떨어뜨려 보건예산의 수지타산을 맞추려는 미국·유럽·일본의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급격히 성장하게 됐다.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앤드설리번은 2019년 바이오시밀러 글로벌 시장 규모가 239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세대 바이오시밀러에 셀트리온 등 진출
국내업체 중 셀트리온이 2세대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6년부터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 개발에 착수한 셀트리온은 2011년에 임상실험을 마쳤다. 이듬해 한국식약처에서 제품판매 허가를 받았고, 2013년 유럽의약품청(EMA)에서도 판매허가를 받아냈다. 발매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유럽 오리지널 의약품 시장의 20% 이상을 잠식할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최대 시장인 미국 FDA 승인까지 받은 상태다. 셀트리온은 이밖에도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 ‘허쥬마’와 비호지킨림프종 치료제 리툭산의 복제약인 ‘트룩시마’를 개발해 임상을 완료하고, 미국·유럽 등의 판매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출발은 늦었지만 삼성그룹의 안정적인 자금력을 내세워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인 브렌시스(유럽명 베네팔리)를 개발해 유럽과 한국에서 판매 중이다.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렌플렉시스(유럽명 플리사비)도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자체 개발한 제품을 외주를 줘 생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개발과 생산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셀트리온과는 다른 방식이다.
투자비용·시간 리스크가 진입장벽
그러나 두 업체를 제외하고 국내 바이오시밀러 업체 중 가시적 성과를 내는 곳은 찾기 어렵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제약·화학업체들은 적극적으로 시장에 나서길 꺼리는 분위기다. 돈과 시간이 가장 큰 장벽이다. 업계에서는 통상 2세대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위해 2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된다고 보고 있다.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만 5∼10년이 걸린다. 화학구조만 알면 똑같은 약을 계속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제네릭과 달리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세포를 배양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오리지널과 동일한 복제약을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제네릭’이라는 용어 대신 비슷하다는 의미의 ‘시밀러’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문에 오리지널과의 동등성을 입증하는 데도 훨씬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제네릭의 경우 20∼50명이면 족한 임상요구 환자 수가 400∼1000명에 달한다. 부작용을 우려한 소비자(의사·환자)들의 반감도 강한 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정제약과 달리 바이오의약품은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의사나 환자들은 시밀러 제품을 대할 때 약효보다 부작용을 먼저 걱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신뢰도를 쌓기 위해 마케팅에 글로벌 거대 제약사를 끼고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품 개발 이후에 마주하게 되는 특허분쟁까지 고려하면 기업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는 더 커진다. 셀트리온은 현재 미국 현지에서 존슨앤드존슨과 레미케이드 물질특허를 두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런 리스크 때문에 아예 발을 빼는 업체들도 나오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올해 초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정리했다. 다국적 제약업체인 미국 머크사와 맺었던 로열티 계약이 틀어지면서 사업을 계속 이끌어가기에는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다. 충북 오송에 지었던 7000ℓ 규모의 바이오시밀러 생산시설도 바이넥스에 팔았다.
더 까다로운 바이오 신약 개발은 아직 멀어
바이오신약 부문에서는 갈 길이 더 멀다. 국내에서 바이오신약으로 성과를 낸 업체는 SK케미칼 등 일부에 불과하다. SK케미칼은 2009년 A형 혈우병 치료제인 ‘NBP601(앱스틸라)’을 개발해 기술 수출에 성공한 바 있다. 국내에서 개발된 바이오신약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바이오제약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산업에 적합한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배경은 사노피-아벤티스 대표는 18일 전경련이 주최한 ‘바이오제약의 미래와 기회’ 세미나에서 “최근의 트렌드는 기업 독자적 신약 연구개발이 아니라 인-라이선싱, 아웃-라이선싱, 조인트벤처 등 다양한 형태로 협력하는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제약 강소기업들이 신약개발을 임상단계까지 끌어올리면 대형 제약업체들이 기술을 사들여 남은 임상과 마케팅 등을 담당하는 방식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위치한 인천 송도에 바이오산업을 위한 대규모 클러스터 단지를 조성하고 관련 산업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바이오시밀러-유전자 재조합기술과 세포배양기술 등을 활용해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과 품질·효능 및 안전성 측면에서 동등성이 입증된 복제 바이오의약품. 살아있는 세포를 이용해 단백질을 배양·정제해 생산하기 때문에 오리지널과 완전히 동일한 바이오의약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경제 히스토리] “무주공산 바이오시밀러 시장, 오르기는 쉽지 않다”
입력 2016-08-19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