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한장희] 대통령이 놓친 올림픽 효과

입력 2016-08-18 17:30

성적도 관심도 예전만 못하다. 그래도 올림픽은 올림픽이다. 역대급 명승부의 주인공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 그가 절체절명의 순간 되새긴 혼잣말은 ‘할 수 있다’ 신드롬을 몰고 왔다. 양궁 대표팀은 더위에 지친 국민들에게 청량감을 선사했다. 전 종목 석권의 비결이 공평무사한 대표 선발이라는 분석은 ‘금수저’에 상심했던 서민들에게 다시 희망을 보여줬다. 올림픽은 뭉치게 하는 힘이 있다. 이기라고 악을 쓰며 응원하다 보면 무리 내 갈등은 어느새 잊혀진다. 이길 경우 결집력은 배가된다. 무리의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여론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국기(國旗)효과’라 부른다. 부정적인 정치 이슈가 가려지는 ‘시선 분산 효과’는 덤이다.

고대 그리스 정치인들은 노골적으로 국기효과를 탐했다. 도시국가들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겼다. 타국 선수 임대뿐 아니라 심판 매수도 흔했다고 한다. 우리 대통령들도 국기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반전 계기를 마련했다. 임기 5년차 가족 비리로 곤두박질치던 대통령 지지율은 대표팀의 4강 진출 후 극적으로 반등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효자 노릇을 했다. 광우병 파동으로 급전직하했던 지지율은 야구대표팀, 박태환 등이 선전한 후 수직상승했다.

말은 안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국기효과가 절실했다. 진경준 파동, 조선·해운 부실에 사드 배치 갈등까지 더해져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를 찍었다. 핵심참모 우병우 민정수석이 각종 의혹에 휩싸였을 때 리우올림픽이 시작됐다.

출발은 좋았다. 연일 승전보가 이어졌고, 영웅이 탄생했다. 탁월하다고 평가받는 대통령의 정치 감각도 꿈틀댔다. 광복절 경축사 핵심 주제로 대북 메시지가 아닌 대국민 메시지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할 수 있다’ 정신으로 무장하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연설은 박상영의 중얼거림보다 울림이 크지 않았다. ‘박상영처럼 하면 되는 데 왜 스스로 자조하느냐’는 다그침으로 들렸다는 이도 있다. 신드롬을 국민적 합의로까지 발전시키려 했던 게 결과적으로 무리수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어떤 이는 “양궁처럼 사교육과 파벌 없이도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으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자고 호소했다면 어땠을까”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올림픽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주력 종목의 잇단 패전에 정치, 사회 뉴스에 달린 댓글 수는 다시 늘고 있다. 국기효과 기대치도 그만큼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개각 카드도 역효과를 냈다. 낙선한 측근을 재기용한 회전문 인사는 쇄신을 기대했던 국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다음 올림픽은 2018년 한국 평창에서 열린다. 박 대통령이 개막을 선언하지만 폐막식(2월 25일)엔 차기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폐막식 전날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회의 성공 여부는 온전히 현 정부의 성적표에 달려 있다. 왜 그런지는 브라질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경제 불안으로 개막 전부터 실패의 기운이 감돌았던 리우올리픽은 결국 대통령이 직무를 못하는 상황에서 손님을 맞았다. 비록 올림픽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지만 박 대통령은 차기 올림픽효과 극대화를 위해 뛰어야 한다. 다만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양궁처럼 공정의 원칙을 먼저 세우는 게 필요하다.

한장희 정치부 차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