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친구 하나가 말문을 열자, 다른 친구들이 목소리를 높여 말을 막는다. 우리가 왜 가난해? 나는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처음에 말을 꺼낸 친구가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가난한 거야.”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짓말을 한 건 바로 나다. 며칠 동안 에어컨을 살까 말까 망설이면서 가난을 자주 생각했다. 산동네이고, 집 바로 옆에 숲이 우거진 왕후의 능이 있고, 더위를 덜 타는 체질이라 연일 폭염주의보와 경보가 뜨는 이번 여름도 선풍기만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열대야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앞집 윗집 옆집에서 밤마다 에어컨을 틀어댔다. 베란다 쪽으로 창문이 난 내 방에서는 이웃의 실외기 소음과 열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집이 에어컨을 틀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 억지로 밀어낸 열기는 모두 어디로 갈까. 단 하나 에어컨이 없는 우리 집으로 몰려와 나는 초콜릿처럼 녹아버릴지도 몰라.
이런 무더위에 에어컨 없이 지내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더위와 더불어 남들이 밀어낸 열기까지 견뎌야 할 형편이다. 개인 대 개인을 놓고 볼 때 가난한 이들이 부자보다 더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리는 없다. 양보심이 많고 착한 마음 때문이 아니라 뙤약볕에서 일해야 할 사정이 있고 에어컨을 살 여유가 없어서, 다른 이들이 안락하기 위해 밀어낸 열기를 감수할 뿐이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안락함을 넘치도록 누리는 것은, 의도가 무엇이든, 타인에게 불편함을 떠넘기는 일이다.
그래서 가난은 남들을 부러워하는 역할을 하거나 불편함을 묵묵히 감수하면서 타인의 행복에 기여한다. 가난은 바늘귀를 통과하고 있는 낙타일까.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양보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천국이라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말은 진실이다.
글=부희령(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바늘귀를 지나가는 낙타
입력 2016-08-18 18:47